극장·대학병원 사라진 중구…도심 공동화 남일 아니다

이지현 기자I 2023.09.06 06:00:00

중앙극장 폐관에 이어 82년 된 대학병원도 폐원
사람 발길 이어지던 곳 역사 속으로…빌딩숲만
무역협회 대학생 인구 논문대회 통해 관심 환기 노력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서울 강남에서 남산1호터널을 지나 종로 쪽으로 진출하는 관문 풍경이 변하고 있다. 오랫동안 버스정류장 이름이 ‘중앙극장 앞’이었지만, 2010년 폐관하며 그 자리에는 ‘대신증권’ 본사가 들어섰고 정류장 이름은 ‘남대문세무서·국가인권위원회’로 변경됐다. 과거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번엔 그 맞은편에 자리한 서울백병원이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 인근 버스정류장 명은 서울백병원이지만 82년만에 폐원하며 병원 자취도, 정류장 이름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 중구 인구 감소 전환 사라지는 大병원

지난달 31일 서울백병원은 완전히 문을 닫았다. ‘백인제외과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중구 저동에서 1941년부터 자리 잡았지만, 80여년만에 간판을 떼게 됐다.

아래서 바라본 서울백병원과 주변 고층빌딩의 모습(사진=이지현 기자)


서울백병원 폐원의 가장 큰 원인은 감당 못할 적자였다. 한때 서울에 이어 상계동과 부산, 일산 등에 분원을 내며 성장했지만, 2004년부터 적자로 돌아선 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20년간 쌓아온 만성적자만 1745억원에 이른다. 형제병원의 수익을 메워가며 서울 모병원을 지키려고 애썼지만, 이미 줄어든 환자들의 발걸음을 돌리기는 역부족이었다. 백병원 관계자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 서울 도심에서 대형 병원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40여년 전부다. 명동성당 옆에 있던 명동성모병원은 1983년 여의도로 일찌감치 자리를 옮겼고 이 터는 가톨릭회관이 지키고 있다. 을지로에 있던 을지대병원은 1995년 노원으로 옮겼다. 종로6가에 위치했던 이대부속 동대문병원은 2008년, 중앙대 용산병원은 2011년, 제일병원은 2021년에 폐원했다.

서울 자치구별 1966년부터 최근까지 인구 규모 추이(자료=서울연구원 등)
이 시기는 도심 인구 감소 시기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서울연구원 등의 1966년부터 최근까지 자치구별 인구 규모 추이 현황에 따르면 서울 중구 거주인구는 1966년 15만명대였던 것이 1975년 28만명대로 급격히 늘었지만, 차츰 줄어 2010년 11만명대로 내려앉았다. 지난 8월 기준 중구 인구는 12만1482명으로 집계됐다.

중구 관계자는 “중구엔 기업이 많다 보니 직장을 둔 생활인구가 45만명이나 되지만, 주민등록을 두고 있는 거주인구는 1/3도 안 된다”며 “인구가 줄어드니 가장 먼저 교육기관이 사라졌고 병원까지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 대도시 중구 머리 맞댔지만

문제는 이같은 도심공동화 현상이 서울뿐만 아니라 광주 동구, 대구 중구, 대전 중구, 부산 중구, 울산 중구 등 대도시 도심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이들 7개 지자체가 모여 대도시 중심구 협의회를 만들고 인구유입 방안을 공통으로 마련 중이다.

가장 최적의 대안이 ‘직주근접(직장과 주거시설이 근접)’으로 제시됐다. 협의회 한 관계자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땅값으로 상업시설만 자리해 충분한 주거시설 확보가 어려운 상태”라며 “도시마다 이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인구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이 일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하고 있다. 도심공동화, 지방소멸, 기업위기 등으로 도미노처럼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할 사람이 사라지면 경제 활기는 떨어지고 기업 경쟁력도 약화하기 때문이다.

대안 마련을 위해 산업계가 먼저 행동에 나섰다. 최근 무역협회는 ‘MZ(밀레니얼+Z세대) 저출산 논문대회’를 통해 인구 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했다. 연애를 미루고 자기개발에 몰입하는 MZ 세대의 특성을 감안해 소개팅앱 개발, 방송 연예프로그램을 통한 육아행복 전파, 둘째 자녀 출산 지원을 중심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 등이 대안으로 제안되기도 했다.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은 “청년세대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긍정적으로 바뀔 때 출산율 제고와 함께 무역과 경제 지속 가능한 발전도 기대할 수 있어 논문대회를 준비하게 됐다”며 “앞으로 가정친화적 문화가 기업과 협회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