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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지난 7일까지 3개월 사이 8.0% 떨어졌다.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달러 외 31개 주요 통화 가운데 세 번째로 낙폭이 컸다. 1위는 물가상승률이 80%에 육박하는 아르헨티나 페소화로 15.2%를 기록했으며, 코로나19 이후 부동산 거품이 가장 심했던 뉴질랜드 뉴질랜드달러(키위달러)가 9.2%로 그 뒤를 이었다.
역대급 가치하락을 겪고 있는 영국 파운드화(-7.56%)나 일본 엔화(-6.48%)보다도 원화 가치 낙폭이 컸다. 영국 파운드화의 경우는 미국발 금리인상에도 정부의 부자감세안에 지난달 26일 파운드당 1.0327달러까지 하락한 바 있다. 이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시절인 1985년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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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엔화 역시 지난달 22일 달러당 145.90엔까지 치솟았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약 24년만에 엔화를 28조원어치 사들이며 가치를 올리려 하기도 했다.
원화가치는 특히 3분기 하락폭이 컸다. 6월 말 달러당 1298.90원에서 9월 말 1430.12원까지 오르며 10% 넘게 원·달러 환율이 올랐다. 이달 초에는 1440원을 넘기기도 했지만 며칠 새 급락하면서 3개월 기준 상승폭이 8%로 줄었다.
4분기에도 원화 가치가 추가 하락할 여지는 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만큼 강달러 독주가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40년만에 최고치를 찍은 물가를 잡기 위해 ‘인플레 파이터’를 자처한 연준은 올 들어서만 3번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렸다. 이는 평소 인상폭의 3배 수준이다.
11월과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도 각각 0.75%포인트, 0.5%포인트 추가로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열어뒀다. 시장은 내년 말 기준금리가 4.6%에 달할 것이며 최소 2024년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화 가치가 현재보다도 4%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엔화와 유로화 등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측정하는 달러 지수의 4분기 기술적 저항선 상단을 116.80 부근으로 전망했다. 현재 달러 지수는 112대이다. 다국적 은행 스탠다드차타드(SC)도 달러 지수가 4분기 116.50~117.00대로 오를 수 있다고 봤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지정학적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적 경기후퇴에 대한 시장 우려가 여전하다”며 “달러 이외 통화가 연말 전까지 지속해서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이 동남아 국가들보다도 통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고수와 수출 감소가 중국 경제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등 동북아 국가들이 통화 가치 방어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우려 역시 원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짚었다. 북한 핵실험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중국·대만 간 긴장으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설명이다.
국제적 환율 공조 가능성이 낮은 가운데, 미국으로서는 강달러를 통해 자국 인플레이션을 타국에 수출하는 게 여러모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도 분석했다.
다만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아시아 통화에 대한 (약세) 압력이 최소한 다음 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각국의 외환보유고가 비교적 충분한 만큼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은 작게 봤다.
한편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500원까지 오를 가능성도 거론됐다. 타이 후이 JP모건자산운용 수석전략가는 최근 세계경제연구원 주최 행사에서 원·달러 환율 시장 전망치가 3개월 내 1400원 수준이라며 이 같이 점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