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과 도선이 만난 곳은 나중에 서울 성동구 도선동이 됐고, 일대는 ‘십리(十里)를 더 가라(往)’는 의미에서 왕십리로 이름 붙었다. 정사는 아니고 야사이다. 신라 사람이 조선 사람을 만나는 게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조선 건국 과정에서 불교의 역할이 엿보이는 구전이다.
한양으로 무대를 옮긴 무학은 태조 5년 지금의 성북구 안암동에 영도사를 창건했다. 사찰은 1779년 정조의 후궁 홍빈의 묘가 근처에 들어서자 지금의 터로 옮기고 개운사로 개명했다. 애초 터가 있던 자리는 현재 고려대학교가 들어섰다. 안암동을 상징하는 개운사는 사찰에서부터 6호선 안암역까지 개운사길로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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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인사동 이름에서도 힘겹게 원각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생긴 인사동은 이 일대 행정구역 관인방과 대사동의 가운데 글자 인(仁)과 사(寺)를 각각 따서 명명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사동은 큰 절이 있어서 붙은 이름인데 이 절이 원각사다.
인사동처럼 지명에 영감을 주고 사라진 절도 다수다. 은평구 신사동은 새로운 절(새절)이 있어서 이름 붙은 동네다. 지하철 6호선 새절역의 이름도 여기서 왔다. 다만, 이 절이 무슨 절인지는 전해지는 게 없다고 한다. 구로구 천왕동은 조선 초기 개척한 동네인데, 인근에 천왕사라는 사찰이 있어서 이름을 빌려 왔다. 현재는 천왕사 터만 남았다. 강동구 암사동은 신라 시대 바위에 터 잡은 사찰(암사)에서 유래했다. 암사는 지금 헐리고 없다. 성동구 사근동은 청계천 하류에 있던 신라의 사찰 사근사에서 유래했다. 절터에는 한양대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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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동에 면해 있는 성북구 보문동의 보문사도 고려 시대 창건한 천 년 사찰이다. 절은 해방 이후 불교계 혼란기를 겪으면서 1972년 창종한 대한불교보문종의 총본산이 된다. 사찰 설명으로는 보문종은 세계 유일의 비구니 종단이다. 보문동명은 보문사에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