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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회계업계에서는 회계사 자격 인원을 늘려야 한다는 논의에 대해서는 한발 빠진 상태다. 오히려 회계사 시험 합격자 수를 늘리겠다고 밝힌 금융당국이 회계사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당장 인력은 더 필요하지만 전체 규모가 커지는 것은 부담스러운 딜레마에 놓인 상태다.
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치르는 회계사 시험의 합격 예정인원은 1000명이다. 이는 지난해 최소선발예정인원대비 17.6%(150명) 증가한 수준이다. 외부감사대상 회사가 증가하고 신(新) 외감법 시행 등으로 인력 수요가 증가하는데 따른 조치다. 최근 10년간 선발 계획이 850명이었지만 실제 900~1000명 가량 합격한 것을 감안할 때 올해 합격자는 이보다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위 발표 후 회계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공인회계사증원반대모임 소속 회계사들은 서울정부청사에서 여러 차례 시위를 열어 ‘일시 수요를 근거로 증원 시 일선 회계사 입지가 줄어든다’며 반대에 나섰다.
기술의 발전으로 회계 업무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력을 늘릴 경우 회계사들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한 대형회계법인 고위 임원은 “지금 환경만 놓고 보면 회계사 인력이 크게 늘어야 한다고 볼 수 있지만 벌써 인공지능(AI)을 업무에 적용하면서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며 “무작정 인원을 늘린다면 향후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감사시간이 늘어나면서 당장 인력 수급이 필요한 회계법인은 난감한 입장이다. 실제 올해 회계사 시험 합격자수를 두자릿수 비율로 늘리겠다고 했지만 4대 회계법인의 신입 채용계획은 현상 유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부응해 신입 채용을 늘릴 경우 증원을 반대하는 업계 논리와 모순이 생기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아니냐는 게 일부 시각이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신입 회계사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 잘 마련된 대형회계법인으로 대부분 채용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면서도 “‘모시기 경쟁’이었던 신입 채용 전쟁이 예전보다 둔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업 측에서는 복잡한 회계기준 환경에서 회계사 증원을 요구하고 있다. 아니면 미국 등 해외 공인회계사 자격도 전문인력으로 인정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회계사 증원에 대한 반대 입장을 수차례 밝혔던 한국공인회계사회의 최중경 회장 역시 보조 인력 허용 등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인력 수급이 원활치 않은 중소회계법인도 내심 증원을 바라는 눈치다. 회계사수 50명 안팎의 회계법인 대표는 “감사 부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높은 임금을 주면서 회계사 영입을 추진 중인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회계사 합격자수를 늘리면 향후 공급 과잉보다는 현재 인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