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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박재홍 한국발레협회장은 형인 박재근 상명대 무용예술학전공 교수와 함께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활동한 형제 발레 무용수로 무용계에 잘 알려져 있다. 한국발레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린 두 형제의 아버지 박화성 옹은 지난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을 받기도 했다.
박 회장은 “예전에는 발레를 어떻게 하게 됐냐고 물으면 그럴싸하게 말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냥 ‘소명’라고 말한다”며 웃었다. 발레와의 만남 자체가 운명 같았기 때문이다. 13세 때 형을 따라 선화예중을 방문했다 발레 교사였던 에드리언 델라스를 만났다. 박 회장의 신체적인 특징에서 무용수로서의 소질을 발견한 델라스가 발레를 권해 배우기 시작했다.
박 회장의 어릴 적 꿈은 사실 과학자였다. 형을 제외하면 가족, 친척들 모두 자연·이공계에 소질을 보였기 때문이다.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뒤에도 과학자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세운상가를 기웃거리며 기판과 부품을 사서 라디오와 앰프를 만들었다. 대학에서도 무용이 아닌 영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발레를 배우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유니버설발레단과의 본격적인 인연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1984년 창단공연에 출연하면서부터 시작했다. 1986년부터 정단원으로 활동하며 발레단과 함께 세계 무대를 누볐다. 박 회장은 “유니버설발레단이 유럽·미국·동남아 등 전 세계에서 정말 바쁘게 공연할 때였다”며 “문훈숙 단장과도 함께 공연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회고했다.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캐나다 로열위니펙발레단에서 객원무용수로 활동하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형도 유니버설발레단 무용수로 활동하며 발레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발레의 위상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형제가 발레를 배우는 것을 처음부터 좋아하지는 않았단다. 박 회장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3대가 공부를 하면 집안이 도서관이 된다’며 ‘집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서 물려주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이 공부를 하기를 바라셨지만 발레를 하게 돼 죄송한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두 형제의 아버지가 받은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컸다. 박 회장은 “형제가 지금 대학에서 무용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바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지난해 아버지께서 받은 상이 작게나마 보답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