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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긴장시킨 '송곳'…결과물은 역대 최고 수익률[기관장열전]

지영의 기자I 2024.08.27 06:20:00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국민 노후자금 수익률 끌어올린 깐깐한 금융엘리트
불도저 기질에 할 말 하는 성격
기업 지배구조 두고 날카로운 발언 쏟아내
수익률 끌어올리고 기금 적립금 1000조원 돌파

대통령의 손발이 돼 정책을 펴는 곳이 정부 부처라면, 정부 정책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는 곳은 공공기관입니다.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무엇보다 공공기관장들의 적극적인 역할과 협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데일리는 정부의 국정 과제와 각종 정책을 일선에서 수행하는 주요 공공기관의 CEO를 조명하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지난 2022년 9월. 새 이사장을 맞이하는 국민연금공단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금융권에서 업무 효율을 중히 여기는 ‘철저한 성과주의자’에 마음먹은 일은 강하게 밀어붙여 ‘불도저’라는 별명이 붙은 경제관료가 이사장으로 부임해왔기 때문이다.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의 별명 중에 허투루 붙은 것이 없음은 그의 고속 승진 이력에서 엿볼 수 있다. 김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경영학·석사(수료) 출신으로 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기수 내에서도 남다른 승진 속도를 자랑하며 증권·자산운용·보험 등 시장 전반을 경험, ‘금융통(通)’으로 불렸다. 금융위원회의 핵심 보직인 금융정책국장과 자본시장국장에 이어 상임위원과 사무처장 등을 두루 거친 뒤 예금보험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그가 자본시장국장 시절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도입하고 가입자 확대를 위한 육성책을 여럿 내놓아 밀어붙인 사례는 익히 알려져 있다.

‘쉽지 않은 역대급 상사’. 복수의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들은 김 이사장의 별명과 소문이 정확했다고 평가했다. 김 이사장이 부임 초부터 수익률 제고 방법·방향에 대한 질문과 논의 거리를 쏟아냈고, 그게 기금운용본부를 비롯한 국민연금공단 전체를 긴장시켰다는 후문이다. 취임 만 2년 차를 앞둔 지금 역시 그의 질문도, 국민연금의 긴장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저돌적인 경제관료를 수장으로 두고 있는 국민연금에는 최근 의미 있는 수식어가 늘고 있다. 국민연금 1000조 시대, 그리고 역대 최대 수익률이다. 지난해 국민연금기금 결산 결과, 기금 순자산은 1035조8000억원으로 지난 2022년 대비 약 145조원 증가했고, 운용 수익률 13.6%로 기금운용본부 설립(1999년)이래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 (사진=국민연금공단 제공)


◇ ‘할 말 하는’ 스타일, 기업 지배구조 정조준...평가는 엇갈려

“그는 선배든, 후배든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김태현과 일을 해본 이들이라면 그의 날카로운 직언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 김 이사장과 ‘가까운 듯 먼 사이’라고 전제를 단 금융위원회 전직 고위 관료는 이렇게 평가했다.

거침없이 할 말은 한다는 김 이사장의 성향은 국민연금 재임 초기부터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소유분산기업, 일명 ‘주인 없는 기업’을 향해 서늘한 발언들을 꺼내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 의무) 강화 필요성을 시사하고 나섰다.

투자 기업에 대한 책임투자활동이 리스크를 줄이며 수익률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김 이사장은 대표적인 소유분산 기업들을 향해 비판 메시지를 날렸다. 지배구조가 고착화 돼 후계자 양성을 하지 않거나, 내부 인사 등용을 우선시하면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곳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후 국민연금은 대표적 소유분산 기업 중 KT와 충돌을 빚었다. 지난 2022년 당시 KT 구현모 현직 대표가 연임 의사를 표명하고, 이사회가 연임 적격 판정을 내리자 절차적 공정성이 부족하다는 국민연금의 비판 메시지가 잇따랐다. KT 이사회 규정에는 연임을 시도하는 현직 CEO가 이사회 ‘적격’ 결과를 받으면 다른 후보 공모 없이 주주총회에서 재선임 절차를 밟도록 되어 있었다. 논란 끝에 구 전 대표는 연임 도전을 포기했고, KT 이사회는 공개모집과 외부 자문단 검증 방식을 강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김 이사장은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3연임 도전을 두고도 공정성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포스코 CEO 후보자추천위원회가 기존 이사진으로 구성되고, 별도의 외부 공모 없이 현직 회장을 1차 후보군으로 포함해 선정 작업을 진행하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기존 회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해 합리적인 후보 선출이 불가능한 구조라는 지적이었다. ‘호화 출장’에 연루된 포스코홀딩스의 사외이사 재선임 안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공격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성향의 기관장이 감수할 몫은 엇갈리는 평가다. 자본시장과 학계에서는 김 이사장을 두고 국민연금의 수장이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과 느슨했던 스튜어드십코드 기조를 팽팽하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교차한다.

◇ 산적한 과제 속속 해결...기금 안정성·전문성 보강

김 이사장 취임 이후 국민연금은 다방면으로 시장 환경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금운용 체계를 다지고, 전문성 보강도 이뤘다. 국민연금은 지난 상반기 자산군 간 칸막이를 허물어 자산 배분의 유연성을 추구하는 ‘기준 포트폴리오’ 도입을 마무리지었다.

4대 공적기금(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사학연금·KIC)과의 세무협의체를 결성하는 등 세무 전문성 강화 기반을 다지기도 했다. 해외투자 증가 속에 세무 전문성을 강화해둔 국민연금은 최근 핀란드 상장주식 배당원천세 환급 소송에서 승소, 2014년 이후 핀란드에 납부한 배당금 원천세 전액을 환급 받는 성과를 냈다.

전주의 열악한 자산운용 환경 개선을 위해 글로벌 투자사들과의 협력 기반도 다졌다. 김 이사장의 임기 중 글로벌 운용사인 블랙스톤과 프랭클린템플턴, BNY멜론 등이 전주에 연락사무소를 냈다.

◇ 국민연금의 시대적 과제 연금개혁, 김태현이 ‘키맨’ 될 수 있을까

불도저같은 성향의 김 이사장은 임기 내 연금개혁에도 동력이 될 수 있을까. 국민연금의 시대적 과제인 연금개혁은 이해관계와 집단 간 입장차이가 치열하게 엇갈리는 난제다. 숨가쁘게 달려온 취임 만 2년. 올해 김 이사장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연금개혁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그 어느 때보다도 관심이 뜨거운 시기다. 정부는 이르면 이주 중 국민연금의 틀 자체를 개혁하는 구조개혁안의 골자를 발표한다.

김 이사장은 지속적으로 연금개혁에 대한 의지를 피력해왔다. 연초 신년사에서도 올해를 연금개혁을 위해 심기일전하는 한 해로 만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공적인 자리에서 수차례 “소득보장강화와 재정안정성, 세대간 형평성 하에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앞으로 보험료를 내야할 젊은 세대가 흔쾌히 부담할수 있는 국민연금 개혁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김태현 이사장은…

△1966년 경남 진주 △대아고△서울대 경영학 학·석사(수료) △행정고시 합격(35회) △총무처 사무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금융정책과 증권제도과 서기관 △외교통상부 주OECD 1등서기관 △금융위원회 자산운용과장 △금융위원회 보험과장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실 선임행정관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예금보험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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