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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남긴 생생한 유언…인정받지 못한 이유[상속의 신]

성주원 기자I 2024.03.10 09:00:45

조용주 변호사의 상속 비법(5)
1958년 제정 민법, ''영상'' 유언은 인정 안해
녹음 유언으로 봐도 성명 구술·증인 등 요건
사인증여로 인정되려면 의사합치 정황 필요
시대변화 못담은 민법…영상유언 시 신중히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 시골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왔던 한영훈씨는 자식을 7남매나 두었다. 아들 둘, 딸 다섯을 두었는데 큰 아들은 한씨 근처에서 농사를 지었고 작은 아들은 도시에서 살았다. 한씨는 나이가 들면서 농사를 짓는 큰 아들에게 땅을 다 주고 싶었지만 작은 아들이 그런 기색을 알고서 아들들에게 똑같이 땅을 나눠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시아버지에게 잘 하던 작은 며느리도 ‘아들들에게 똑같이 나눠주셔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한씨는 나머지 딸들에 대해서는 상속을 해 주려는 마음이 없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작은 아들이 한씨에게 선물들을 주면서 큰 아들과 똑같이 나눠 달라고 하는 내용의 말을 하도록 유도해 영상을 찍도록 했다. 한씨는 작은 아들이 즐겁게 해 주고 선물도 주는 바람에 갑자기 영상을 찍었다. 영상을 찍는 곳에는 한씨와 한씨의 배우자, 작은 아들 내외, 작은 아들의 자식들이 있었다. 한씨는 “나는 다음과 같이 유언하는 바다. 내가 가진 땅들은 큰 아들과 작은 아들에게 똑같이 나눠주겠다. 대신 큰 아들은 딸들에게 2000만원씩 나눠줘라. 그러면 나는 아무런 불만도 없다”라는 말을 영상을 찍으면서 했다.

유언의 방식이라 함은 요식행위인 유언에 관해 민법이 요구하고 있는 일정한 방식을 말한다. 민법이 요구하는 일정한 방식에 따르지 않으면 유언은 무효가 된다. 대법원은 확고하게 민법 제1065조 내지 제1070조가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으로 정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유언의 방식은 민법에 5가지의 방식이 규정돼 있다. 자필 증서에 의한 유언, 녹음에 의한 유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구수 증서에 의한 유언. 이렇게 5가지의 유언으로만 해야 한다. 우리 민법은 영상에 의한 유언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영상에 의해 이뤄졌지만 민법 규정의 녹음에 의한 유언으로 봐야할 것이다. 녹음에 의한 유언의 민법 규정은 이렇다.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 및 성명과 연월일을 구술하고, 이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해야 한다(제1067조). 미성년자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 유언으로 이익을 받을 자 및 그 배우자와 직계혈족 등은 유언에 참여하는 증인이 될 수 없다(제1072조 제1항). 이러한 조항에 따라 영상을 찍더라도 결국 녹음이 되는 것이니 증인이 1명 이상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고, 증인의 자격이 민법의 규정에 부합해야 한다. 따라서 상속을 받을 자나 이로 인해 이득을 얻을 자가 증인으로 참여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 한영훈씨 이외에 참석한 자들은 모두 증인 자격은 없으므로 이러한 녹음을 포함한 영상은 녹음에 의한 유언으로서 효력이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녹음에 의한 유언의 경우에 그것이 요건에 맞더라도 피상속인이 사망한 경우에 해야 할 절차가 있다. 피상속인의 사망 후에 녹음에 의한 유언이 발견된 경우 즉시 피상속인의 주소지 내지 상속 개시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에 검인절차를 신청해야 한다. 법원은 검인신청이 들어오면 기일을 정하고, 녹음에 의한 유언이 있음을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알리고 검증을 한다. 다만 그 검증이 유언의 효력을 확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러한 유언이 있음을 공적으로 기재하는 것일 뿐이다. 검인절차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유언무효 소송에서 유언은 무효가 될 수 있다. 검인절차에서 이해관계자들이 아무런 이의가 없다면 그러한 검인조서를 가지고 부동산 등기가 가능하나, 등기가 거부될 수도 있으므로 유언효력확인 소송을 제기할 필요도 있다.

이 사건에서 한영훈씨의 녹음에 의한 유언이 무효가 되더라도 사인증여가 될 여지가 있다. 사인증여는 증여자가 생전에 증여를 약속하는데, 그 증여의 조건이 자신이 사망한 뒤에 효력이 생기는 것이다. 유언과 달리 사인증여는 증여하는 사람과 증여받는 사람간의 계약이라 의사의 합치가 있어야 한다. 이 사건은 법원에서 사인증여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1·2심에서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사인증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2심에서는 영상 촬영 도중 작은 아들이 “상속을 받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작은 아들이 직접 촬영했고 촬영원본을 소지했으며, 아버지가 촬영 도중 “그럼 됐나”라고 반문하기도 한 점 등을 들어 사인증여의 의사의 합치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작은 아들이 아버지와 동석해 촬영한 사실만으로 사인증여를 인정할 수 없고, 그렇게 인정하면 다른 자식들에게 불리한 판단이라고 해 사인증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사인증여에 대해 법원은 사실상의 의사의 합치가 있을 정도의 구체적 정황이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비디오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유언을 하는 것이 녹음에 의한 유언이나 자필 유언보다 더 진실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민법이 1958년에 만들어질 당시 영상에 의한 유언에 대해 예상하지도 못했다. 시대에 따라 민법의 내용도 바뀌어야 하는데 이러한 방식의 유언도 인정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영상에 의한 유언은 위험한 방식일 수 있으니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 공증에 의한 유언 등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용주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연수원 26기 △대전지법·인천지법·서울남부지법 판사 △대한변협 인가 부동산법·조세법 전문변호사 △법무법인 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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