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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잘못된 토론 인식 바꿔야…숙론의 장 마련해볼 것"[만났습니다]

장병호 기자I 2024.06.04 05:34:39

‘숙론’ 펴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인터뷰③
최재천 교수, ''숙론'' 화두로 제시한 이유
토론 수업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신간 집필
“능력 있는 토론 진행자 있으면 숙론 가능"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숙론을 시도하다 실패한 경험이 많다. 그래서 누구보다 숙론을 잘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재천(70)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최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수실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2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며 “기왕에 책도 냈으니 제대로 된 숙론의 장을 마련해 볼지 고민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간 ‘숙론’을 펴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최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수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최 교수의 신간 ‘숙론’은 교육자로서 오랜 기간 고민해 온 생각을 집약한 책이다. 최 교수는 1990년 하버드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34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귀국 이후 1994년부터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 가지 궁금증을 갖게 됐다. 한국에서는 유독 토론 수업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의식이 ‘숙론’으로 이어졌다.

최 교수는 한국에서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 토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에서 토론은 “‘내가 옳다’, ‘당신이 틀리다’라며 싸우는 ‘언쟁’으로 오염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토론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 다른 의견을 깊이 있게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숙론’을 새 화두로 제시한다.

최 교수가 꼽는 숙론의 이상적인 예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몽플뢰르 콘퍼런스’다. 1990년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며 혼란에 빠진 남아공의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진행한 국가 회의다. 서로 다른 의견으로 대립하는 단체의 교섭을 이끌어온 전문가를 초빙해 약 1년간 워크숍과 대국민 소통을 진행하며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두고 민주적 합의를 도출했다. 그 결과 극한의 사회 갈등을 극복하고 초이념적·초당파적 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최 교수는 지금 한국에서 제대로 된 ‘숙론’이 이뤄지기 위해선 ‘몽플뢰르 콘퍼런스’처럼 능력 있는 숙론 진행자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다양한 이야기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토론의 환경과 규칙을 이에 따라 토론을 이끄는 역할이다. 최 교수는 “진행자만 잘 준비된다면 한국 사회에서도 숙론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간 ‘숙론’을 펴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최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수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최 교수는 다양한 정부 위원회에 참가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숙론을 시도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위원장을 맡았던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는 특정한 결론을 도출하진 못했지만, 한국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이들에게 토론 환경만 마련해주면 숙론이 가능함을 확인했다. 기대가 컸으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아쉽게 끝난 위원회도 있다. 코로나19일상회복지원위원회다. 최 교수가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위원회 활동이 중단됐다.

최 교수는 “코로나19 이전 국민은 기회주의 성향이 있었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자신이 무언가를 쥘 기회가 생기면 그것을 거머쥐기에 바빴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서로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이런 분위기를 사회 변혁으로 이어갈 기회였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그 경험을 다 지우고 과거로 돌아가 버렸다”고 말했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질문에는 “거창한 목표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최 교수는 “한 번도 무언가 목표를 거창하게 세우고 돌진하고 추구하는 식으로 살아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다”며 “퇴임 이후에는 교수실에 있는 이 많은 책을 들고 어딘가 새로운 장소를 찾아 책도 쓰고, 강연도 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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