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여 동안 매일 전화를 건 쪽은 대림산업의 해외영업팀. 당시 사우디카얀이 계획하던 세계 최대 규모인 연산 26만톤의 폴리카보네이트(PC)를 생산하는 설비 공사를 따내기 위해서였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종전까지 PC 생산에 반드시 들어갔던 맹독성 신경가스 ‘포스겐’을 쓰지 않는 친환경 설비로 만들어야 해 시공사 선정이 까다로웠다. 발주처의 관심 밖에 있던 대림산업은 시공 경험과 기술력을 설명하기 위해 집요하게 전화공세를 폈던 것이다.
결국 사우디카얀 측은 “대림의 ‘모닝 알람’에 두손 들었다”며 대림산업에 프로젝트 프리젠테이션을 허락했다. 결과는 대성공. 대림은 국내에서 호남석유가 발주한 공사를 이미 수행하고 있다는 점과, 이를 통해 얻은 문제점 극복방안 등 노하우를 제시해 13억5000만 달러에 일괄도급방식(EPC Lump sum Turnkey)으로 이 공사를 수주했다.
이듬해 여름엔 갑(甲)과 을(乙)의 입장이 바뀐 유명한 일화가 쓰여졌다. 대림산업에 사우디카얀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날아온 것. 1년여전 중국 한 건설업체에 맡겼던 연산 40만톤 규모의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High Density Polyethylene) 공장 프로젝트를 대림이 대신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공기를 맞출 수 있는 곳은 당신들밖에 없다”는 요청을 대림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6억달러 규모의 공사가 제발로 찾아온 격이었다.
사우디카얀은 이후 4억3000만달러 규모의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Low Density Polyethylene) 프로젝트까지 연이어 대림에 맡겼다. 플랜트 산업의 메이저로부터 받은 공사 수행능력에 대한 신뢰와 평가를 바탕으로 현재 대림산업은 중동 대다수 메이저 발주처의 입찰에 초청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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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산업은 이미 중동 화공플랜트 분야에서 글로벌 EPC(설계·조달·시공)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 속에 건설 경기 침체도 지속될 것을 감안, 기존 강점은 살리고 신사업 모델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우선 첫 손에 ‘디벨로퍼(Developer) 도약’을 꼽는다. 이는 EPC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지분 투자와 시설의 운영 관리까지 전 분야를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Total Solution) 사업자로의 변화를 말한다. 디벨로퍼는 최근 재정이 열악한 동남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수요가 커지고 있다. 민간 업체의 자금으로 공장,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림산업은 이런 기류를 포착해 디벨로퍼 사업을 전담하는 사업개발실을 올해 새로 구축했다.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는 민간 기업이 투자자로 참여해 발전소를 소유, 운영하며 투자비를 회수하는 민자발전(IPP·Independent Power Plant) 모델이다. 김윤 대림산업 부회장은 “대림은 EPC 분야에서의 확실한 경쟁 우위를 바탕으로 지분을 투자하고 건설 후 유지 관리를 포괄하는 ‘EPC 플러스’ 사업으로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주력 사업인 정유, 가스 플랜트 중심에서 해외 발전플랜트 비중 확대도 꾀하고 있다. 세계적 전력난으로 인해 지속적인 수요가 예상되는 가운데 동남아, 인도 등에서 대규모 발주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림은 수십 년간 국내에서 축적한 경험으로 2011년 10월 사우디 전력청으로부터 12억 달러 규모의 쇼아이바Ⅱ(ShoaibaⅡ) 복합화력발전소를 단독 수주하고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도 수주고를 올렸다.
중동 중심의 수주영토를 다변화하는 것도 올해 대림의 목표다. 안정된 해외 시장 포트폴리오를 수립하기 위해 새로운 거점 확보하겠다는 것. 사우디, 쿠웨이트 등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동남아시아 및 중남미 진출도 가속화할 예정이다.
아울러 향후 대규모 수요가 예상되는 친환경 녹색 산업에 대한 투자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 해상풍력발전 강국인 유럽을 중심으로 시장 조사에 착수했으며 향후 유럽과 아시아, 북미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물재생 사업에서도 기존보다 에너지를 30% 덜 들이면서 상수원에 미량으로 포함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정수 처리 파일럿 플랜트(시험 공장)’를 준공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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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림산업은 이처럼 성장동력 추가발굴에 나서면서도 무리하게 외형 성장을 추진하기보다 내실을 탄탄히 하는데 더 집중키로 했다. 대내외 경기 침체의 장기화 등 복병이 도처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장변화에 따라 사업본부별 포트폴리오를 수익성 중심으로 조정하고 성장 한계에 이른 국내 건설시장보다는 해외사업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해외사업에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국가별·프로젝트별 해외영업 전문인력과 해외현장 경험인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해외영업 통합조직을 통해 사업본부간 협업을 강화하고 입찰 및 집행 프로세스를 개선할 계획이다.
또 환율과 유가의 급격한 변동에 대비한 위기관리책을 마련하고, 국내외 금융시장 경색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부채비율을 낮추고 영업자산을 줄이며 현금을 충분히 확보해 재무건전성을 키울 예정이다. 아울러 리스크 요인을 수시로 분석해 상시적으로 경영계획과 전략에 반영하고 영업의 핵심포인트를 꼼꼼하게 챙기는 전략적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미세 경영)’를 실행한다는 방침이다.
김윤 부회장은 “차별화된 제품 개발, 고부가가치화 등 비가격 전략을 구사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포착하는 동시에 위기관리체제를 마련해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비할 것”이라며 “경영전략의 성공적인 실행을 위해 사업의 핵심적 구체사항을 집요하게 추진해 글로벌 디벨로퍼로서 자리매김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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