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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단체들은 헌재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이후 낙태법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의학적 문제에 대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왔다. 그러나 의학적 우려에도 모자보건법 입법예고안에 허용 임신주수에 대한 의료계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되 15~24주는 조건부 허용, 25주부터는 처벌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임신 10주 이내까지만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안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안을 각각 발의했다.
김재연 회장은 “현재 살아 있는 아이를 꺼내면 살인죄가 적용된다”며 “그런데 임신 22주나 24주의 경우 아이가 살아서 나온다. 현행대로라면 살인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누가 수술을 하려고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생존 가능성이 10%라도 있는 주수를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종교단체에서는 6주를 기준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임신 6주의 경우 여성이 임신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일 경우가 많다”며 “사실상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생리가 2개월 정도 멈췄을 때 스스로 임신을 자각할 수 있고 여기에 자기결정권을 반영할 수 있는 숙고기간을 2주 정도 더 준다면 10주가 적정할 수 있다”며 “2주의 숙고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반영한다면 10~12주 정도가 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약물 낙태의 오남용이 심각하다며 빠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먹는 낙태약으로 알려진 미프진이다. 9주 이내 복용할 경우 자연유산에 이르도록 하는 약물이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가 나지 않아 판매와 구매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선 홍보와 거래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김 회장은 “낙태약의 경우 비아그라와 전혀 다른 약”이라며 “의사의 지도아래 복약이 이뤄진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약만 타서 복용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9주 이후에 임의로 먹을 경우 사망한 태아가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해 패혈증 등이 올 수 있고 심한 경우 임신부가 사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단속할 수 있는 법이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점검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김 회장은 “낙태약의 보편화가 상식화되면 결국 현재의 상식이 무력화될 것”이라며 “무분별한 남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불법이 만연한 후에 만든다면 그땐 이미 늦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