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잡동사니에 몸 누일 곳 없는 단칸방살이
월9천원 수도세 1년 밀려도…60대男, 주변 도움요청 안해
주민센터 지원에 주거사다리 누려
“열악한 주거환경 바꿀 수 있어…이웃들 관심 절실”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20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한 골목 꼭대기에 위치한 주택의 야외 단칸방. 겨우 한 평 남짓해 협소한데다 살림살이와 잡동사니가 뒤엉켜 몸 누일 공간도 없던 방에 살던 조모(60)씨는 이날 인근의 깨끗한 빌라로 이사를 했다. 10여년 동안 이웃과 교류도 않고 홀로 살던 조씨가 주거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할 수 있던 건 지자체 공무원들 등 공동체 도움 덕분이었다. 경계심 가득한 거친 말 외엔 말수도 없었다던 조씨였지만 이사 후엔 “좋다, 기분 괜찮다”는 말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조모(60)씨가 10여년간 거주하던 서울 구로구 개봉동 야외 단칸방의 이사 전 모습.(사진=조민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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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조씨 집 앞은 이사를 도우러 온 개봉3동 주민센터 직원들과 사회복무요원들로 북적였다. 벽지도 없이 시멘트벽이 다 드러난 이 열악한 집에 쌓인 수많은 짐 더미에서 조씨가 이삿짐으로 내놓은 건 플라스틱 박스 4개뿐. 까맣게 썩어버린 물, 뚜껑 열린 전기밥솥, 오래된 전선 줄. 이사를 시작한 직원들이 집 안에 있는 짐들을 들어내기 시작하자 온갖 먼지와 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 묵은 짐들은 트럭 하나를 가득 채웠다. 한 시간여 동안 주민센터 직원 11명이 동안 땀을 흘린 덕에 이사는 무사히 마무리됐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조씨의 사연은 집주인을 통해 알려졌다. 조씨가 월세 20만원에 수도세 등 공과금을 최근 1년간 납부하지 않자 집주인은 직접 주민센터를 찾아와 조씨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겨울엔 월 9000원어치 수도세를 내지 않아 수도가 터지고 보일러도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사연을 들은 주민센터 직원들은 직접 SH 취약계층주거사다리사업을 알아보고 신청부터 계약까지 조씨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화장실이 주거지 밖에 있어 주거사다리사업에 당첨될 수 있는 조건에 해당된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후 남은 계약 과정도 모두 직원이 동행해서 복지 차원에서 도움을 드렸고, 이사하고 나서도 가전제품이나 생활용품이 하나도 없어서 아직 신경써야 할 일이 더 남았다”고 설명했다.
이사를 도운 사회복무요원 반모(24)씨는 “주민센터에서 이런 방식으로 독거노인을 지원하는 사례를 처음 알았는데, 독거노인이 사는 곳을 청소하는 걸 뉴스에서만 보다가 직접 해보니 생각하곤 많이 다르고 힘들었지만 뿌듯하다”고 했다.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여있음에도 스스로 여건을 바꿀 수 없는 이들은 조씨 외에 더 있다. 이들을 위해 지자체 등이 나서서 위기가구를 직접 발굴하고 있지만 한계는 분명 있다. 공동체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구로구청 관계자는 “이번엔 집주인이 먼저 얘기해줘 주민센터에서 조씨를 설득해서 지원을 한 사례”라며 “당사자가 선뜻 나서지 못해도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이 있다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생활 여건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 20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조모(60)씨의 이사를 돕고 있는 주민센터 직원들.(사진=조민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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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조모(60)씨가 살던 단칸방에서 나온 쓰레기더미는 트럭 한 대를 가득 채웠다.(사진=조민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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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조모(60)씨가 10여년간 거주하던 서울 구로구 개봉동 야외 단칸방 내부.(사진=조민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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