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30년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북미·북일 관계정상화 등 이른바 근본 문제인 평화협상을 뒤로 미루고 ‘동결 대 보상’ 방식의 ‘안보-경제 교환’의 미봉책(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합의, 2005년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 2012년 북한과 미국 사이의 2·29합의)으로 일관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둘째로, 미국이 북한 핵개발을 ‘통제 가능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북한위협론을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 등 대중국전략으로 활용한 측면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금지선(red line)을 긋지 않고 ‘전략적 인내’를 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속수무책으로 물러선 배경에는 북한붕괴론이 자리 잡고 있다.
셋째는 핵무기를 ‘수령체제’ 유지의 ‘만능의 보검’이라며 핵개발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둔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과소평가하고,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를 등한시하면서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것 등을 지적할 수 있다.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근본문제 해결을 뒤로하고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유인으로 한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접근은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동결 대 보상 방식인 안보-경제 교환 해법은 북한의 핵개발 고도화를 막는 데 실패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사실상 최종담판은 북미 최고지도자들이 직접 나서 톱 다운 방식으로 추진했던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협상이었다. 군사적 위협 해소 및 체제안전 보장과 비핵화를 교환하는 ‘안보-안보 교환’ 협상이 결렬되면서 협상을 통한 비핵화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북미 적대관계, 남북 분단체제, 한중수교에 따른 북중 갈등, 북한의 수령체제 유지·계승 등 북한의 핵보유 동기는 복합적이다.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 각국의 국내정치 변수, 남남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북핵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북핵 해법으로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고(Deterrence), 제재와 압박을 통해서 핵개발을 단념시키며(Dissuasion), 외교·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추진한다(Diplomacy)는 구상으로, 억제와 단념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핵보유를 선언하고 핵사용 교리를 법제화한 북한은 김정은 연설을 통해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제 만약 우리(북한)의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환경이 변해야 한다”고 밝혀,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과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돼야 비핵화 대화에 나올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당분간 북핵 고도화에 맞서 미국의 확장억제력과 한국의 3축 체제 강화로 ‘공포의 균형’을 이뤄 강 대 강 대치 국면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의 북핵협상을 통해 안보-경제 교환, 안보-안보 교환을 시도했지만 북핵 고도화를 막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남북한이 무한 무기개발경쟁을 지속하거나 안보-안보 교환을 다시 시도하는 것이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별들의 전쟁 프로그램’으로 소련을 붕괴시켰듯이, 남·북한의 무기개발경쟁의 승자는 경제력과 체제역량이 우세한 우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레이건 모델을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다. 우세한 핵무기와 경제력을 가진 미국이 군비경쟁을 통해 경제적으로 취약한 소련으로 하여금 항복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지만, 자력갱생을 고수하고 있는 북한의 수령체제는 쉽게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고르바초프 같은 개혁지도부가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단념을 위한 억제를 우선하지만, 대화와 외교를 통한 단념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