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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태백산맥’ 소설의 판매 뿐 아니라 대여해서 읽은 것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전 국민의 90%가 읽었다고 봐야 한다. 작가로서 정말 고맙고 삶의 보람을 느낀다.”
대하소설 ‘태백산맥’부터 ‘아리랑’ ’한강’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조정래(75) 작가를 빼놓을 수 없다. ‘태백산맥’은 1948년 10월 ‘여순사건’이 진압된 후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치열하게 전개됐던 우익과 좌익의 대립을 그렸다. 소설이 나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다. 소설에서 한민족의 종착점은 ‘휴전’이었다. 2018년의 대한민국은 ‘3차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키며 종전 선언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17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 위치한 ‘태백산맥’의 무대였던 보성여관에서 조 작가를 만났다. 그는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벌교읍을 찾았다. 조 작가는 “남과 북의 정치적 적대감이 풀리면 문화교류도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이라며 “문화교류가 촉진되면 감정이 가까워지고, 정치적인 안정을 기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 90%가 읽은 ‘태백산맥’…“삶의 보람 느껴”
‘태백산맥’은 1986년 출간된 이후 850만권이 팔렸고, 현재까지도 매년 10만권이 팔려나가는 스테디셀러다. 여기에 ‘아리랑’, ‘한강’까지 합하면 조 작가의 대하소설 3편의 판매량만 1550만권에 달한다. 특히 ‘태백산맥’은 1983년 집필을 시작해 6년 만에 완간한 대작으로 원고지 분량은 1만6500매에 이른다. 이데올로기에 따른 분단의 과정과 아픔을 적나라하게 그린 분단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태백산맥에 ‘나라가 공산당을 만들고 지주가 빨갱이를 만든다’는 구절이 나온다. 현 시대에는 지주가 자본가로 바뀌었고 소작인들이 국민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태백산맥이 가진 ‘오늘의 현실성’이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비결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남과 북이 대화의 물꼬를 트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은 바람직하다고 봤다. “분단이라는 것은 민족적 체력소모인데 그렇게 70년을 살았다. 이제는 남과 북이 함께 통일로 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이제는 ‘민족의 원수’라는 느낌을 지우고 ‘형제’로 표현하는 좋은 시대가 오길 바란다.”
올해는 ‘태백산맥문학관’이 탄생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라서 더욱 뜻깊다. 지금까지 문학관을 다녀간 누적 관람객수는 65만 명을 기록했다. 10주년 행사에서는 작가와의 ‘북토크’를 비롯해 필사본 감사패 증정식, 사인회 등의 기념행사가 열렸다. 문학관에는 10권짜리 태백산맥을 손으로 베껴 쓴 필사본 34개가 전시돼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하나의 작품으로 단독 문학관을 만든 데가 없다. 내 사재를 털어 필사본 방을 따로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스토옙스키와 셰익스피어도 필사본이 없고,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레미제라블’도 필사한 게 없다. 태백산맥문학관은 10년간 매해 7~8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아리랑 문학관’과 지난해 개관한 ‘가족문학관’ 중에 유일하게 흑자가 나는 문학관이다.”
△“경제위기 해결해야”…차기작 ‘천년의 질문’
조 작가는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서 정치에 대한 제언도 서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행복을 위해 ‘경제 살리기’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릴케는 불행한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그 사회는 불행한 사회라고 했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경제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IMF 이전에는 국민의 70% 이상이 중산층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나는 빈곤층’이라는 대답이 47%다. 한국은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2만9000달러인데, 개인마다 소득 차이가 엄청난 나라가 됐다. 다만 하나의 정책이 실효를 얻으려면 최소한 3년이 걸린다고 하니 1년은 더 기다려봐야 한다.”
적폐청산도 계속해서 해나가야 하는 과제라고 꼬집었다. 조 작가 역시 지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드라마 ‘아리랑’ 제작이 무산되는 등 피해를 보기도 했다.
“자격 미달인 하나의 정권이 저지른 잘못이지, 우리 사회 전체가 병들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감옥에서 벌을 받고 있다. 나도 피해를 입었던 사람이지만 ‘용서함으로써 보상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가와 정치에 대한 이러한 그의 철학은 차기작 ‘천년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매일 15~20매씩 쓰고 있는데 3권까지 마무리 해서 내년 6월께 내놓을 예정이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대체 국가가 우리에게 해준 게 무엇이냐고 질문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천년의 질문’은 그에 대한 대답이다. 무엇이 문제일까를 바라보고 탐구하다 보면 소설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작가로서 늘 치열한 노력을 해야 한다. 체력이 되는 한 계속해서 집필 활동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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