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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상 이 작품]버르토크 발자취 따라…27명 릴레이 연주

장병호 기자I 2022.08.18 06:15:00

-심사위원 리뷰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피날레 공연
헝가리 작곡가 버르토크 피아노 곡 전곡 연주
한 사람의 생애사 압축해 듣는 느낌

[신예슬 음악평론가] 지난달 31일 일요일 오후 3시부터 11시까지, 공연은 장장 여덟 시간에 달했다. 장소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집. 더하우스콘서트가 매년 7월 진행하는 ‘줄라이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 이뤄진 이 여덟 시간짜리 공연은 헝가리 작곡가 버르토크의 피아노곡을 작곡 순서대로 완주하겠다는 야심찬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었다. 공연에 참여한 피아니스트는 무려 27명이었다.

지난 7월 3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제930회 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중 ‘바르톡 27개의 피아노곡+현과 타악기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 피아니스트 임주희의 공연 장면. (사진=더하우스콘서트)
2020년 베토벤을 시작으로 2021년 브람스, 2022년 버르토크로 이어져 온 이 ‘줄라이 페스티벌’은 한 작곡가의 음악 세계에 푹 빠져서 한 달을 보낼 수 있도록 축제를 꾸려오고 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꼬박 31일간의 공연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축제 마지막 날, 더하우스콘서트는 버르토크의 피아노곡을 모두 순서대로 연주하겠다는 대대적인 프로그램을 내세웠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유튜브나 여타 음원 플랫폼을 통해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긴 했지만 공연장에서 그런 경험을 할 기회는 사실상 전무했다.

무대와 마주앉아 한 작곡가가 쓴 피아노 곡을 작곡 순서대로 듣는 일은 꽤 생경했다. 그건 꼭 한 사람의 생애사를 압축해서 듣는 느낌이었다. 첫 곡은 버르토크가 22세 무렵에 작곡한 ‘코슈트의 장송 행진곡’이었다. 초기작이었던 만큼 버르토크 특유의 타격감 넘치는 피아노 곡이라기보다는 작곡가 리스트의 전통이 깊게 배어 있는 곡이었다. 이어서 연주된 ‘네 개의 피아노곡’은 같은 해, 세 번째 곡이었던 ‘피아노 랩소디’는 이듬해에 쓰인 곡이었다. 20대 초반, 많은 영향 속에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젊은 작곡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연이 중반에 가까워질수록 ‘알레그로 바르바로’ 등 귀에 익은 곡들도 들려왔고, 한 사람의 어투가 조금씩 더 명확해지는 과정도 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곡들을 지나, 마침내 버르토크의 역작인 ‘미크로코스모스’에 도달했다. 언제나 모든 곡이 빛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 꾸준한 흐름 속에 크고 작은 변화의 씨앗들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드러났다.

수많은 연주자가 그 피아노 앞을 오가며 버르토크의 역사를 되살리는 그 과정은 그야말로 집요했다. 조금은 맹목적으로 그의 음악사에 매달리는 것 같기도 했다. 관객으로서 공연을 보고 듣기에도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걸 실현함으로써만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분명 있었다. 그저 음악가가 보내온 시간을 뒤따르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음악에 대한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극적인 큐레이션이나 음악보다 큰 주제 없이, 음악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내고, 음악을 공들여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이번 ‘줄라이 페스티벌’의 피날레 공연을 보며, 나는 이제껏 더하우스콘서트가 견지해온 태도가 이 공연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느꼈다. 더하우스콘서트는 예술가의집에서 촘촘한 주기로 공연을 개최하고 있고, 그것이 매번 빛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변화의 씨앗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 그동안 축적된 경험을 양분삼아, 이번 피날레 공연처럼, 폭발적인 힘을 담은 공연을 만들어 그 누적된 힘을 발산하곤 한다. 더하우스콘서트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다. 이들의 생애사 속에서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 확언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난 ‘줄라이 페스티벌’의 피날레가 이들의 역사상 빛나는 한순간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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