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 폐동맥 고혈압,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

이순용 기자I 2021.07.03 07:53:34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2015년, 결혼을 앞둔 30세 김모 양은 잦은 어지러움, 실신, 부종과 심한 호흡곤란으로 병원을 찾았다. 김모 양은 식사 시 구역감이 심하거나 소화 불량을 호소하였고, 정확한 원인 진단을 위해 소화기 내과를 방문해 위내시경을 진행했지만, 딱히 몸에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서 일하던 김모양이 실신을 해서 급하게 응급실을 방문했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검진 결과 심장 초음파상 우심실이 심하게 확장이 되어 좌심실을 누르고 있었고, 우심실 부전도 동반해 있었다. 심장 초음파로 살펴본 폐고혈압은 정상인의 3배의 수치에 해당하는 100mmHg 이상이 측정됐다. 폐동맥 고혈압이 의심되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응급실에서 찍은 CT를 통해 폐동맥에 혈전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즉시 김모 양의 입원 절차를 밟았다.

입원한 김모 양에게 우측 심장과 폐동맥의 압력을 재는 우심도자술을 시행했고, 김모 양의 병명은 폐동맥 고혈압으로 판명됐다. 곧이어 입원 치료를 하는 김모 양의 병문안을 온 친언니들이 모두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심쩍은 마음에 곧장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였고, 자매 모두 동일한 유전자에 의한 폐동맥 고혈압임이 밝혀졌다.

폐동맥 고혈압. 심장내과에서도 전문적인 의사가 많지 않은 희귀병 중 하나이다. 가끔 인터넷을 보다 보면, 폐동맥 고혈압 환자인 젊은 여성들이 폐동맥 고혈압을 기대수명이 짧은 병으로 묘사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 으로 묘사하여 감정에 호소하여 쓴 글들이 자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글을 본 환자들은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여 많은 질문을 하곤 한다.

고혈압은 심장에서 혈액이 뿜어져 나가는 혈관인 동맥, 모세혈관, 정맥에 생기고 좌심실 부전을 일으키게 되지만 폐고혈압은 폐혈관인 폐동맥, 폐모세혈관, 폐정맥에 생기는 고혈압이다. 폐동맥은 보통 30mmHg 이하의 압력을 견디게 되지만 폐고혈압이 발생하여 압력이 높아지면 전신의 피들이 돌아오는 우심방, 우심실의 압력이 높아지게 된다. 이로 인해 우심부전이 발생하면서 하지와 간과 같은 장기의 피들이 심장으로 들어오는 데 방해를 받게 된다.

그 결과 소화 불량, 다리 부종이 발생하게 되고, 우심실이 좌심실을 누르면서 전신의 혈액이 돌지 못하여 잦은 실신을 일으키게 된다. 아울러 폐동맥 압력이 증가하게 되면, 폐에서 산소를 혈액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효율적으로 할 수 없게 되어 산소포화도의 감소, 호흡곤란과 청색증이 나타나게 된다. 폐동맥고혈압은 선천성 심장질환, 루프스 같은 자가 면역 질환으로도 발현되기도 하고, 김모 양처럼 유전적인 원인에 의하거나 혹은 특발성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약물 독성도 원인이 될 수 있어, 폐동맥 고혈압을 유발하는 일부 다이어트약이 퇴출당하기도 했다.

2000년도 이전까지는 쓸 수 있는 약제가 한두 개로 제한적이었고, 병명이 진단되기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려, 진단 후 환자의 생존 기간이 2~3년에 불과했다. 전임의로 있던 시절에, 둘째를 낳다가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젊은 여자 환자가 심한 폐동맥 고혈압을 진단받았던 적이 있었다. 아이와 산모가 모두 위험한 터라 산모는 결국 에크모를 삽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많은 약제가 개발되면서 전세계적으로는 10종 정도의 약제를 사용을 할 수 있게 됐다. 다양한 약물의 개발과 폐동맥 고혈압 전문의들의 노력으로 인해 이전보다 생존 기간이 늘어난 것도 고무적이다. 비록 국내에서는 7개 정도의 약제밖에 도입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약물의 복합 요법을 사용하는 것에도 많은 장애물이 있는 실정이지만, 이전에 비해 쓸 수 있는 약제가 많이 구비되어 가고 있고, 조기 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적절한 약물치료와 심장 재활, 스트레스 관리, 일상생활 관리를 통해 국내 폐동맥 고혈압의 예후가 점차 좋아지고 있다.

6년이 지난 2021년 김모 양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결혼한 환자는 여러 복합제 약물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환자는 병에 대해 충분히 교육을 받아 심장 재활과 철저한 스트레스 관리를 하고 있으며, 외래에서는 환자의 경과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환자의 우심실 기능은 모두 회복되었고 폐동맥 고혈압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거의 정상화되었다. 화장실조차 가기 어렵고 소화가 어려웠던 김모 양은 이제 낮은 산을 등산하고, 여행도 가고, 식사도 잘하면서 남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의학은 점차 발전하고 있고, 이전에 비해 많은 병의 예후가 바뀌고 있다. 막연한 두려움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질병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제대로 알려진 치료를 받으면서 긍정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모든 질병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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