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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어쩌면 우리 세대의 비망록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썼다. 나는 작가라서 감사하게도 내 목소리를 가졌지만 그러지 못한 이들도 많이 있다. 함께 겪은 혼란과 좌절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떠들기를, 우리에게 더 많은 스피커가 주어지길, 그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2009년 스물네 살의 젊은 나이에 등단했지만 사회문제를 들여다보는 눈은 날카로웠다. 최근 첫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민음사)를 출간한 작가 박민정(33)은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휩쓸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첫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2014·민음사)에서는 젊은 세대와 부모 세대의 갈등을 다뤘고, 지난해 내놓은 ‘아내들의 학교’(2017·문학동네)에서는 몰래카메라부터 은밀한 폭력까지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미스 플라이트’는 실수로 발생한 항공기 결항이나 미탑승을 뜻하는 말이다. 소설은 감정노동으로 착취당하는 여성 승무원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 홍유나는 노동조합 문제로 회사 측의 감시와 압력을 받다가 죽음을 택한 대형 항공사의 승무원이다. 유나의 아버지 정근은 군대에서 비리에 가담했다가 불명예스럽게 전역한다. 가정에서도 툭하면 폭력을 일삼던 그는 한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던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망연자실하며 주변 사람들을 통해 딸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유를 추적한다.
-승무원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주변에 항공사 직원이 꽤 많은 편이었고, 나 자신도 승무원의 일상에 관심이 많아 SNS와 기사를 열심히 찾아봤다. 항공사 직원인 딸과 퇴역한 공군 아버지로 설정하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승무원직을 수행하는 노동자로서의 삶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왜곡된 여성성의 한 표상으로서 순종적인 서비스직의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것이 싫었다. 영어교사를 꿈꾸다가 승무원이 되기로 한 유나의 삶에 항공사 조직의 부조리가 어떻게 끼어드는지, 그것이 한 인물을 얼마나 좌절하게 만드는지 주목해서 봐주면 좋겠다.
-여성의 성장 이야기를 다루면서 ‘페미니즘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문학을 하는 나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신념이자 이론적 도구이고 실천의 방향이다. 나에게 ‘되돌아갈 길 없는 페미니스트 모멘트’를 겪기 전과 후는 완전한 전환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다.
-여성작가로서 ‘미투’ 운동은 어떻게 봤는지
△증언을 들을 때마다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너무나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여성작가로서 나의 모든 진술 역시 ‘미투’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관심 갖는 소재는
△호흡과 리듬과 볼륨 등 장편소설에 어울리는 소재와 화법의 조화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 다음 작품은 여러 가지 가족사와 역사적 전환기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작품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지
△살아가는 내내 나의 모든 경험을 소설을 위한 공부로 생각해왔다. 사람들과 나누는 작은 잡담들도 모두 영감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