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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들은 LNG저장탱크 건설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로 일정 시공실적을 갖춘 소수의 업체들만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했다. 대규모 사업인 만큼 낙찰을 위해 가격경쟁을 하기 보다 서로 나눠먹자고 합의한 것이다.
특히 발주처인 한국가스공사의 참가자격 완화 조치로 몇몇 신규 업체들이 입찰자격을 얻게 되자 기존 업체들은 이들도 끌어들여 모든 참여업체들의 짬짜미를 유지했다.
건설사들은 이런 식으로 지난 2005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가스공사가 최저가낙찰제 방식으로 발주한 12건의 LNG 저장탱크 공사 입찰에서 낙찰 예정사와 들러리 참여자, 투찰금액 등을 미리 정하고 투찰해 총 3조 5495억원 상당의 사업을 부당 수주한 혐의를 받는다. 이번 사건은 최저가낙찰제를 적용한 국책사업 가운데 담합 규모가 가장 크다.
건설사들은 이 기간 3차에 걸친 자체 합의를 통해 담합행위를 벌였다. 이들은 먼저 수주 순서를 정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다. 건설사들은 1차 합의 때 제비뽑기로 각자 낙찰 순번을 정했고 2차 합의 때에는 1차 합의의 순번과 동일하게 수주 순서를 결정했다.
그러다 가스공사의 물량 미발주로 2차 합의로 정한 순번의 업체들이 실제 수주를 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건설사들은 그러자 이들 미수주 업체들이 향후 금액이 큰 공사를 받을 수 있도록 3차 합의에서 결정했다. 담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서로 물량을 고르게 배분하는 등 이해관계를 조정한 것이다.
기존 업체들은 이 과정에서 낙찰순번이 후순위였던 신규 업체들이 ‘기존 업체의 배신으로 나중에 낙찰을 못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합의를 유지한다’는 각서까지 써줬다. 배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건설사들은 또한 ‘낙찰율을 과도하게 높이지 말자’라는 나름의 원칙을 지켰다. 낙찰 예정사는 들러리 회사에 예정된 낙찰가보다 조금 높은 가격의 입찰 내역서를 대신 작성해줬다. 낙찰 예정사는 들러리사가 이 입찰내역서로 투찰한 사실을 확인하면 이보다 낮은 가격으로 투찰했다. 짬짜미에 참여한 건설사들은 이런 방식으로 최저가낙찰제를 무력화했다.
실제 건설사들의 연도별 낙찰율 현황을 보면 △1999~2014년 69~78%에서 △2005~2013년 78~96%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로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 이준식)는 9일 공정거래법 위반과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건설사 10곳과 각 건설사 소속 전·현직 임직원 20명을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된 건설사 법인은 대림산업과 한양, 대우건설, GS건설, 현대건설, 경남기업, 한화건설, 삼부토건, 동아건설, SK건설이다.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의 합병으로 새 법인이 돼 불기소 처분(공소권 없음)됐다. 공정위는 두산중공업과 포스코건설의 경우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적용해 고발하지 않았다.
검찰은 담합범죄의 경우 법인 뿐 아니라 행위자 개인도 처벌하는 원칙을 이번에도 적용했다.
이준식 부장검사는 “보통 건설사 차장이나 부장급 정도가 모여서 실제 담함을 하면 내부 임원에게 보고를 하는 형식”이라며 “회사 고위직까지 보고 되고 그 윗선에서 (담합) 지시가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이에 실무자와 함께 고위직도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가스공사는 담합행위를 했던 13개 기업에 대해 2000억원대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의 이번 무더기 기소는 이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