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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74) 명지대 석좌교수는 1993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시작하며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을 들고 여행을 다녔던 ‘유홍준 키즈’라면 알만한 문구다.
대중적 답사붐을 일으켰던 그가 다시 한번 전국 팔도를 순례한다. 시대순으로 국내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새 답사시리즈 ‘국토박물관 순례’ 1·2권(창비)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지역을 둘러봤다면 이번 책은 시대를 찾아가는 답사기인 것이다. 그는 여전히 “내 발길이 미치지 못한 곳이 너무도 많더라”고 말한다.
◇시대순으로 정리한 새로운 유랑기
유 교수는 최근 서울 창비서교빌딩에서 기자들과 만나 “30년 동안 주목받아 온 답사기를 어떻게 완료하는가가 나의 큰 과제”라며 “어떤 식으로든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데 의미 있게 끝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시대순으로 찾아가는 순례기 형식이다. 그는 “빠지면 안 되는 곳을 지역이 아니라 시대로 찾아가는 것으로 바꿨다”며 “내가 마치 쓰려고 빈칸으로 놔둔 것처럼 각 시대 대표 유적들이 남아있더라”고 덧붙였다.
각 유적·유물 자체의 의미는 물론 발굴 전후의 이야기, 최근의 재발굴 성과 등을 함께 담았다. 예컨대 전곡리 구석기 유적은 1978년 당시 미군 상병 그레그 보엔이 한국인 연인과 한탄강 주변으로 데이트를 나갔다가 ‘주먹도끼’를 발견한 과정과 그 놀라운 의미, 그리고 훗날 부부가 된 두 사람이 2005년 연천군의 초청으로 내한한 얘기까지 전한다. 보엔은 마침 입대 전 미국의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학생이었고, 국내외 이름난 고고학 전문가들에게 연락해 자신의 발견을 널리 알렸다.
책에는 유적과 유물마다 다양한 곁가지가 풍부하게 흘러나온다. 유 교수는 “정통 미술사에선 얘기할 수 없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해 각 시대의 속살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답사기 시리즈의 장수 비결은 ‘진화’
그의 답사기는 기행문학의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다. ‘문화유산 답사’라는 말조차 새롭던 시절, 대대적인 답사 붐을 일으키며 1년 만에 백만부 넘게 팔렸다. 1993년 시작된 이 시리즈는 지난해 ‘서울편’ 3·4권을 더해 총 20권까지 출간됐다. 국내편 12권에 일본편이 5권, 중국편이 3권이다.
유 교수는 국내편 12권에 5권의 ‘국토박물관 순례’를 더해 전체 17권 정도로 국내 답사기를 마무리할 뜻도 밝혔다. 유 교수는 “팔십 전에 다섯 권으로 끝낼 생각”이라며 “근현대 유적지로는 대구 청라언덕 근현대거리를 쓰지 않을까 싶다. 답사기에 섬 얘기도 없어서 섬도 써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서 맨 마지막 꼭지는 독도가 될 거라고 마음속에 정해놓고 있다”고 했다.
답사기 시리즈가 30년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로는 ‘진화’를 꼽았다. 유 교수에 따르면 답사기는 애초 3권으로 계획돼 있었다. 유홍준 교수는 “연속극 늘어나듯 (책 분량이) 늘어난 게 아니라 북한에 갔다 오는 바람에 4권 ‘북한편’을 쓰게 됐고, 문화재청장을 마친 뒤에는 충청도와 제주도의 요청이 있어서 다시 이어 쓰게 됐다. 몇 차례 진화의 계기가 있었다”고 했다. “덕분에 신선하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채 독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국토박물관 순례’ 역시 답사기의 진화인 거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