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은 주로 작고 불안정한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지난해 임금체불의 절반 이상은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발생했고, 30인 미만 기업에서의 임금체불액이 전체의 7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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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 3월 인천에서 할인마트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근로자 10명에게 6300여만원에 달하는 임금을 주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해 기분이 나빴다는 게 이유였다. 김씨는 “한번 벌금 내면 그만”이라고 말하며 조사를 회피하기도 했다.
처벌 수준이 높은데도, 사업주들의 임금체불에 무감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계에선 원인이 ‘반의사불벌’ 조항에 있다고 본다. 임금체불 사업주는 징역까지 받을 수 있지만, 1심 선고 전까지 근로자와 합의하거나, 근로자로부터 처벌불원서를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의사불벌 조항은 2005년 7월 근로기준법 개정과 함께 도입됐다. 밀린 임금을 빠르게 청산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연 20% 지연이자를 물리는 등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채찍과 함께 도입된 일종의 당근책이었다.
그러나 제도 도입 후 사업주가 밀린 임금을 대가로 처벌불원서를 요구하고,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으면서 악순환에 빠진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반의사불벌 조항은 근로감독관이 근로자에 합의를 종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임금체불 규모는 해마다 늘어나 2011년 처음으로 1조원을 넘긴 후 한 번도 1조원 밑으로 내려온 적이 없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 근로감독관의 시정지시 등 행정지도를 통한 체불청산은 대폭 늘었다. 법 시행 이전인 2004년 행정지도 청산 비율은 28.5%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59.8%으로 뛰었다.
처벌이 강하니 반의사불벌 조항이 효과가 있던 것 아닐까. 그러나 실제로 임금체불로 중형을 처벌받는 사업주는 드물다. 드문 걸 넘어, 밀린 임금보다 적은 벌금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업주가 체불한 액수 대비 벌금액이 30% 미만인 경우가 77.6%를 차지한다.
약한 처벌과 반의사불벌이 더해지니, 임금을 받지 못해 억울한 근로자가 다시 ‘을’이 된다.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민사소송을 하는 것 자체가 근로자에겐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사업주는 이런 상황을 노려 체불임금의 전부가 아닌 일부만 주는 대신 처벌불원서나 고소취소장을 써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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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업주는 임금체불자료가 신용정보기관에 제공돼 대출·이자율 심사나 신용카드 발급 등에 영향을 받게 된다. 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사업이나 보조가 제한되고 공공사업 입찰 시에도 감정을 받는 등 불이익을 부여할 계획이다.
나쁜 사업주에게도 한 번의 기회는 더 주어진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일시적 경영상 어려움 등으로 체불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대상 사업주에게 충분한 기간을 줘 체불을 청산하도록 유도할 것”이라며 “융자제도 활용 등 구체적인 청산 계획을 제출하면 위원회의 객관적 심의를 거쳐 제재하지 않는 방안도 두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