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했다. 그리고 분명했다. 1시간여 동안 정부세종청사 인근 카페에서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개혁`이라는 표현만 18번이나 강조됐다. 이재명 대선캠프 경제2분과위원장을 맡으며 공정경제 부문 ‘경제책사’ 역할을 하고 있는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차기정부 대통령은 과감한 개혁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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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교수는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활동하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지근거리에서 살펴봤다. 현재는 서울대 경제연구소 분배정의연구센터장으로서 한국 사회의 불평등·불공정 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는 경제학자다.
그가 대선캠프에서 관련 논의를 하면서 주목한 차기정부 공정경제 부문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공공부문의 부패 척결과 민간부문의 공정한 시장질서다. 여기에는 반부패 기구 신설, 민관유착 방지 및 권력기구 투명성 강화, 노동경찰제 도입,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전속고발권 폐지, 플랫폼 시장 규제 강화 등 세부 과제가 있다.
기획재정부, 국민권익위원회, 인사혁신처,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지방자치단체 등 중앙·지방정부가 모두 관련된 이슈다. 주 교수는 “이재명 후보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어려움을 공감하면서 경제적 강자들의 힘의 논리를 제어하려는 의지가 가장 강한 정치인”이라며 “차기정부에서는 정상적인 시장경제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주 교수와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차기정부 1순위 과제는.
△공공부문의 구조적 부패·불투명성 문제, 불공정한 경제질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매년 발표하는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는 50점대(2012~2019년)에 그쳤다. 여러 부패 사건을 보면 전·현직 관료, 검찰, 입법·사법·행정 엘리트들이 민간업자와 담합한다. 부정한 사익 추구를 하는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힘 있는 기업이 과도하게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고 새로운 기업이나 하청기업·노동자는 피해를 입는다. 특히 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등 노동시장이 취약하다. 후진적 자본주의의 문제다.
-우선 공공부문 개혁은 어떻게.
△공공부문 부패를 없애려면 공공부문이 투명해져야 한다. 관료사회의 사익추구가 근절돼야 한다. 이를 위해 독립적인 반부패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 지금의 권익위 체제는 적절치 않다. 신설되는 반부패 기구를 통해 민관유착에 대한 대대적인 전방위 조사와 공개가 상시화 돼야 한다. 그리고 고위직 퇴직 관료들은 퇴직 후 어떤 회사에 재취업 했고, 얼마를 버는지 다 공개해야 한다. 자신이 받는 급여를 공개하지 못할 정도로 떳떳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 개인정보 공개 문제가 있지 않나.
△물론 헌법소원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퇴직한 고위공무원들이 민간에서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공공부문에서 일한 덕분이다. 그들이 거래해서는 안 될 권력을 거래할 때 시민들의 기본권이 침해된다. 이를 제한하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고위공무원들의 퇴임 후 급여 공개는 충분한 공익성이 있다.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문제는.
△산하 공공기관으로 가는 관료 낙하산 문제가 있다. 공무원들이 산하기관 임원으로 재취업 하는 게 너무나 보편화 돼 있다. 한전(015760)뿐 아니라 대부분의 공기업들이 퇴행적인 지배 구조를 갖고 있다. 관료들이 산하기관장으로 부임하면 공공기관이 합리적으로 운영되기 힘들다. 퇴직 관료들은 더 합리적·효율적·자율적으로 경영관리를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상급기관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관피아를 막더라도 정피아(정치인+낙하산)가 오면 문제다.
△부적격 낙하산이 오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부적격 낙하산이 많은 건 청와대, 중앙부처 관료들이 공공기관 임원 임명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부처, 청와대 등이 공공기관 임원추천위원회,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위원 추천권을 독점하고 있다. 앞으로는 공운위에 노동자, 소비자 측을 대거 포함하는 등 공운위원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 공기업, 공공기관 이사회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불공정한 자본주의 문제 관련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어떻게.
△지금은 노동시장에서 산업안전 관련 법률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실정이다. 산업재해 사망자가 잇따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후진국만큼 산재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내년 시행하는 중대재해 처벌법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부정적 의견이 많다. 그 정도 처벌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대재해 처벌법을 개정해 법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에선 아우성이다. ‘바지사장’ 만들어 처벌 빠져나갈 듯한데.
△형사처벌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페널티다.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재해 시 기업에 부과하는 과징금을 강화해야 한다. 영국이 2008년 도입한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의 경우 처벌 수위를 법 시행 전보다 10배 이상 높였다. 재해사망 사고를 살인 사건에 준해 처벌하는 것이다. 빠져나갈 편법이 나오지 않도록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체계적인 감시·감독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금융감독, 범죄수사처럼 산업재해·부당노동 등 노동 분야 법 위반을 감독하는 노동경찰제가 확립돼야 한다. 현재 턱없이 부족한 근로감독관 인력을 대폭 확충하고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지방정부가 노동경찰제를 주관하는 게 필요하다. 그 지역의 산업재해 실정을 잘 알고 있는 건 지자체이기 때문이다. 지자체로 근로감독권을 이양하고 지자체가 노동경찰제를 주관하면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앙부처와 지자체와의 상호 경쟁, 견제, 균형 효과도 있을 수 있다.
-네이버, 쿠팡 등 플랫폼 기업 관련 규제는.
△지금 플랫폼 시장은 규제 공백 상태다. 플랫폼 기업들이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적 규제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지위를 강화하고, 단체협상권을 보장해주는 입법도 필요하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 관련 법안(온플법)은 공정위와 방통위 간에 어떻게 교통정리 해야 할까.
△고민 중인 이슈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게 고민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공정위 역량만 가지고서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처 간 협력을 통해 규제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