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에서 바라본 유럽 일부 지역의 위성사진도 그야말로 대륙이 펄펄 끓고 있음을 증명한다. 현재 유럽 대부분 지역은 40℃ 안팎의 찜통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기온은 6월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기온이 최고 42℃까지 치솟으며 인명 피해와 산불 등으로 비상이 걸렸다.
폭염경보, 열파(heat wave)주의보, 휴교령 등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각종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미 지금까지 프랑스에선 폭염으로 인해 3명이 숨졌다. 최악의 경우 올 여름 5000명이 사망할 위험이 있단 경고도 나오고 있으니, 말 그대로 초비상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여름과 폭염. 둘 다 자연현상인지라 모두가 똑같이 겪는 일 같지만, 실제 우리가 삶으로 겪어내는 현실 속의 여름은 자연현상이라기보다는 사회현상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 사회현상은 불가피하게 ‘불평등’이란 이름을 동반한다. 뜨거운 여름에도 밖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 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 쪽방촌 사람들…. 독한 여름은 더 독한 가난과 어깨동무를 하고 불평등과 비극을 몰고 온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을 이야기 할 때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1995년 미국 시카고 ‘폭염재난’이다. 1995년 7월 시카고는 체감온도가 48℃를 기록하는 무더위가 이어졌고, 7월 한 달 동안에만 시카고에서 700명 넘는 사람이 폭염으로 사망했다.
미 당국은 시카고에서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원인을 분석했다. 질병으로 인해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사람들이나 에어컨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사망할 위험이 3배 이상으로 높았다. 또한 폭염에도 집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나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 즉, 사회적으로 고립 돼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개인수준’의 위험요인들이 결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 원인을 ‘개인수준’에서 찾는 데서 그친다면, 폭염으로 인한 사망은 폭염이 올 때마다, 그 다음 해에도, 그 다다음 해에도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회활동을 하라고 독려하는 것도, 집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을 집 밖으로 나가라고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시카고 서부 지역에 아래위로 위치한 두 개의 지역은 인종, 연령 등 사회적 특색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1995년 폭염으로 인한 사망률은 10배 이상 차이가 났다. 한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범죄자나 마약판매상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외출을 꺼렸고 집 밖에 나가지 않다 보니 내 이웃의 위급한 상황에도 자연스레 개입하지 않게 됐다. 더 시원한 곳으로 갈 수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공동체의 와해라는 ‘사회적 요인’이 폭염으로 인한 사망으로 이어졌다. 이쯤 되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자연스레 그 답이 보인다. ‘개인수준’의 위험요인들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에 관해 응답을 하는 것. ‘불평등한 폭염’에 대해 국가가 해야 할 책무다.
올 여름 폭염이 장기간 지속될 것에 대비해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대책과 지원마련에 나섰다.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등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시설에 재해구호기금을 활용해 냉방비를 지급하기도 하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서 폭염 행동요령도 홍보하고 있다. 집배원, 택배기사, 퀵서비스, 대리기사 등 무더위에도 계속해서 이동을 해야 하는 이동노동자들을 위해 무더위 쉼터도 운영한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무더위 쉼터로 오지 못하는 국민은 없는지, 또 행동요령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취약 계층은 없는지, 혹은 받아도 읽지 못하거나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사회적 요인’은 없는지. 보다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서로 더 가까이 있을 때, 서로 더 시원할 수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