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계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헌정회장을 맡게 된 정대철 신임 헌정회장이 취임 1주년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전한 조언이다. 정파를 떠나 서울대 법학과 선배로서 윤 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정 회장은 협치와 포용, 상생의 정치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첫걸음이 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정치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여야 지도자의 의지도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정 회장은 1977년 첫 당선을 시작으로 5선을 역임한 정치 원로로, 지난 46년간 가장 가까이서 한국 정치를 지켜본 인물이기도 하다. 국민의힘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헌정회에서 계파 가릴 것 없는 회원들의 지지를 받아 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을 향해서도 ‘협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회장은 “요새 정치의 극한 대결을 보면 전쟁처럼 보인다. ‘너와 내가 다를 수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은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는 데서 끝나는 것 같다”며 “그래서 대화와 설득, 타협이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야당은 국회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이려고 하고, 다른 한 쪽은 사정 권력이나 거부권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상통의 정치 없이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며 “서로 너무 진영논리에만 빠져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윤 대통령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게 정 회장의 판단이다. 대통령이 국내 모든 정치의 궁극적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야당 지도자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형사 피의자라고) 이 대표를 싫어할 수도 있지만, 아직 피의자지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며 “확정 판결 전까진 당당하게 그를 만나 정치를 의논해야 하는데, 그걸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고 설득하고 타협해야 한다”고 했다.
정 회장은 “(이 대표를) 만나기만 해도 된다. 만나게 되면 자기 얘기만 할 수 있겠나. 이 대표가 양보해야 할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여러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라도 이 대표를 만나야 하는데, 대통령과 여당이 ‘치지도외’(置之度外), 있는데도 (이 대표를)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내가 당 대표였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 대표가 귀찮아할 정도로 많이 만났고, 너무 많이 만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소통을 많이 했었다”고도 했다.
또한 이 대표뿐만 아니라 여당 내 반대 세력을 향해서도 손을 내밀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 회장은 이준석 전 대표를 비롯해 유승민·나경원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 등을 차례로 언급한 뒤 “(남들이 보기엔 윤 대통령이) 제거한 사람들로 보인다”며 “자신에게 반대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전부 제거하는 건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이들을 포용하고 함께 나가는 것이 훌륭한 민주주의 지도자”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정치권 문화 개선을 위해 이재명 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역할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달함과 동시에 야당과 대화를 통해 협치의 정치를 복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대표는 ‘내 문제는 내가 할 테니 당은 당대로 민생을 챙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밀도 있게 내야 한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다.
무엇보다 여야 정치인들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요새는 상대 당뿐만 아니라 자기 당 국회의원끼리도 잘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당연히 상대 당 소속 의원들과 저녁을 먹거나 술을 함께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며 “만남이 줄어들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진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모임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
정 회장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 후 가장 많은 성과를 냈다고 자평하는 미국·일본 외교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내리면서도 이와 관련한 소통의 문제, 러시아·중국을 배제한 편중된 외교는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
정 회장은 “한일 관계를 재건한 것은 특별히 잘했다고 본다. 하지만 사전·사후 소통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데, 정치를 하지 않았던 인물이라 서툴렀던 것 같다”며 “과거사 인식문제, 독도 문제 등은 우리의 입장을 계속해서 떳떳하게 당당히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미 관계 구축도 잘했다.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북한의 핵 위협에 따른 안보 우려를 경감할 수 있게 됐다”면서도 “다만 그 대가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강요하거나 반도체를 포함한 대중국 기술 봉쇄 참여하는 것 등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정 회장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되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완전히 발로 찰 순 없다. 너무 친미 일변도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성과를 내기 위해선 조언 그룹 확대가 꼭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회장은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한 점, 검사에 편중된 인사 등이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특히 정치 원로나 지혜로운 사람들의 조언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걸 잘 안 하는 것 같아 두렵고 걱정스럽다”며 “경제·안보 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전문가, 원로들의 의견이 필요하다. 넓은 시각으로 폭넓게 사람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대철 헌정회장은...
△경기중·고 △서울대 법학과 학사·석사 △미주리대 대학원 정치학 석·박사 △9·10·13·14·16대 국회의원 △민주당 부총재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