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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가'가 최고?…조선업계 옥죄던 전투함 사업 제도 바뀐다

김관용 기자I 2022.10.08 08:00:00

방사청,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 개정
함정 후속함 건조 사업, ''적격심사'' 제도 폐지
''가격''에서 ''기술'' 중심으로 업체 선정 방식 바꿔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저가 수주를 부추겨 조선 산업 생태계 파괴 원인으로 지목됐던 함정 후속함 건조 업체 선정 방식이 개선된다. 건조 실적이나 인력·기술 수준을 배제한채 낮은 가격만 써내면 사업을 따낼 수 있었던 기존의 방식을 다른 무기체계와 마찬가지로 기술 경쟁 방식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7일 현행 가격 위주의 함정 후속함 건조 업체 선정 방식을 기술 경쟁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기존에 계획된 사업들의 추진 일정과 제도 개선에 따른 준비기간 등을 감안해 개정된 제도는 2023년 1월 1일 이후 공고하는 사업부터 적용된다.

◇가격만 낮게 써내면 1순위?

함정 건조 사업은 배치(Batch) 개념을 적용해 진행된다. 배치는 동형 함정을 건조하는 묶음 단위를 뜻하며 배치-I→II→III로 갈수록 함형 발전과 성능 개선이 이뤄진다. 배치-I·II·III 사업에 각각 1번함과 후속함 건조 사업들이 발주된다.

해상기동훈련에서 (오른쪽부터) 대조영함(DDH-Ⅱ), 경기함(FFG), 제천함(PCC), 윤영하함(PKG)이 항진하고 있다. (사진=해군)
그동안 함정 건조 사업은 선도함인 1번함 사업만 제안서 평가를 하고 후속함의 경우 일반 물품구매 시 적용하는 ‘적격심사’ 방식으로 업체를 선정했다. 이는 우선 가격 경쟁을 시켜 가장 낮은 가격을 제안한 업체를 1순위 업체로 선정한 후, 해당 업체의 적격 여부만을 판단해 사업을 주는 방식이다. 선도함 건조 업체로부터 설계도면을 받아 건조하기 때문에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이나 기술력이 큰 변수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는 보통의 방위사업이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에 따라 제안서 평가를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해당 업체의 건조 실적, 보유 인원, 기술력 등은 고려하지 않고 가격만 낮게 써내면 사업을 따낼 수 있는 구조였던 셈이다. 사업 예가 보다 낮은 88%의 금액을 제안하면 만점이다.

◇실적·인력·기술력 의문 업체가 사업 수주

이렇다보니 대형 함정을 건조해 본적도 없는 회사가 해군 차세대 호위함 울산급 Batch-Ⅲ 2번함과 3·4번함 사업을 연이어 따냈다. 2번함 건조 인력도 채우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이 업체는 3·4번함 건조 사업 입찰에도 참여해 예가 8059억원 짜리 사업을 7051억원에 따냈다. 예가의 87.455% 수준으로 만점에 가까운 가격을 제시한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조선업계는 가격 위주의 업체 선정 방식인 적격심사가 고도의 전문성과 기술력이 요구되는 함정 건조 사업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 게다가 가격 위주의 후속함 건조 사업은 저가 수주를 부추겨 하청 중소업체 등 협력사와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산업 생태계 파괴 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정 후속함 건조사업 관련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 개정 내용 및 기대효과 (출처=방위사업청)
한경수 방사청 방위사업정책국장은 “이번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제도 개선으로 함정사업이 기술과 성능 중심의 경쟁체제로 전환되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우리 조선업계가 군함 건조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련 업체의 의견을 수렴해 함정사업의 제도개선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단, 방사청은 함정사업 중 규모가 작은 전투근무지원정 사업의 경우 기술적 난이도가 높지 않은 점을 고려해 기존 업체 선정방식인 적격심사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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