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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온 A씨(여. 32)도 마찬가지였다. 조심스레 물어본 그녀의 첫 질문은 이랬다. “항문에 주먹만 한 보랏빛 혹이 생겼는데, 혹시 암 인가요?”
A씨는 지난 5년여 동안 매년 여름이 오기전 대략 3개월씩 속성다이어트를 반복하면서 변비를 앓았다고 했다. 그런데 단순하게 생각했던 변비는 내치핵을 점점 키웠고, 커진 내치핵이 아예 항문 밖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내치핵을 오랫동안 방치하면 점막과 근섬유조직이 늘어나 탈항으로 진행되는데, 탈항이 반복되면 괄약근도 약해지고 점점 그 크기가 커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탈항 환자는 오랫동안 항문질환을 앓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탈항은 항문벽 돌기(내치핵 등)가 항문 밖으로 심하게 밀려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지 않는 증상을 말하는데, 치핵 돌기가 하나 빠질 수도 있고 심하면 항문 전체가 자루처럼 빠질 수도 있다.
이러한 탈항은 변비성, 노인성, 음부·요도·정관의 이상에 의한 것, 직업상 하복부에 힘을 주는 것이 원인이다. 이 중 A씨처럼 변비성으로 오는 탈항 환자는 여성이 약 80%를 차지한다.
상태별로는 내치핵이 오래되어 빠지는 내치탈항, 항문유두가 커져서 빠지는 유두치탈항, 섬유종이 자라서 빠지는 섬유치탈항, 용종이 길게 줄처럼 매달려 빠지는 용종탈항, 직장점막이 늘어나서 빠지는 직장점막탈항이 있다.
A씨와 같은 내치핵탈항과 직장점막탈항은 피가 나는 것이 특징인데, 오래 방치할 경우 심한 통증을 동반하게 된다. 또 치료를 서두르지 않으면 아무 이상이 없었던 다른 항문과 직장부위에까지 영향을 미쳐, 치료후 변이 단단해지고 피가 조금씩 나오는 2차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치료는 질환의 정도에 따라 좌욕 등과 같은 보존적인 방법, 약물치료, 수술 등으로 나뉘는데, A씨와 같이 탈항인 경우에는 수술 치료가 필요하다.
수술은 대개 괄약근보존 치핵근본절제수술이나 치핵수술용(PPH)기구를 이용해 늘어진 점막을 절제한 후 봉합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PPH를 이용한 수술은 치핵은 건드리지 않고 늘어난 직장점막을 절제하기 때문에 다른 수술에 비해 재발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항문이 작거나 예민한 사람은 의사와 상담 후 수술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탈항된 부위가 작다면 특수 고무링으로 그 부분을 묶어서 제거하기도 한다. 이러한 결찰술은 내치탈항에 효과적이며, 수술을 무서워하는 환자나 재발환자들에게 적합하다. 그러나 외치핵이나 혼합치핵이 함께 있으면 효과가 낮고, 탈항이 오랜 기간 지속됐거나 치루와 치열이 있는 경우에도 치료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단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탈항은 적합한 치료방식으로 치료하면 100% 완치가 가능하고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거의 없는 질병이다. 하지만 모든 질병이 그러하듯 탈항 또한 치료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가능한 한 서둘러 치료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