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역사는 총기의 역사..총기 판매금지 여론 '팽팽'
법안 매번 좌초..수정헌법 2조+NRA 무차별 로비 영향
트럼프, 규제 나섰지만..마중물이냐, 돌파구냐 '의문'
 | | 미국 플로리다 주 고교 총격범 니콜라스 크루스. 사진=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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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미국 뉴저지 거주 12년 차인 개인 사업자 한국인 A씨(44·영주권자). 그는 2012년 이른바 ‘샌디훅 초교 총기 난사사건’을 계기로 사냥총 한정을 샀다. 딸 같은 아이들 수십명이 목숨을 잃는 모습을 보며 ‘우리 가족은 내 손으로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결심을 앞당겼다. 총기를 내 손에 얻는 데는 5개월 남짓. 근처 경찰서에서 관련 서류들을 작성하고 손가락 지장을 찍었다. 수개월 뒤 총기 구매 ID를 받은 A씨는 곧바로 총포상으로 가 약 300달러를 내고 구매를 마쳤다. 그런데 늦둥이 아들이 총기에 관심을 보이는 게 맘에 걸렸다. 5년 뒤인 지난해 8월 그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사냥총을 뉴저지주 검찰의 ‘총기반환 행사’ 때 100달러에 반납했다. 뉴저지는 총기규제가 철저하다. 그래도 18세 이상의 합법적 거주자라면 누구나 쉽게 총기를 살 수 있다. 최근 ‘고교 총기 난사사건’이 벌어진 플로리다는 총기규제가 훨씬 느슨하다. 면허도 필요 없고 주 정부 등록 절차도 없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총기 구매가 가능하다. 탄약은 온라인으로 무제한 살 수 있다. “총기 구매가 4시간의 혼전교육과 3일의 유예기간을 둔 혼인신고보다 편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미국이 매년 총기사고로만 3만명의 목숨을 잃는 ‘내전(內戰)의 나라’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배경이다.
 | |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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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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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역사가 곧 총기의 역사’..“총기 찬성여론, 아직 많다”
미국 재무부의 자료를 보면 3억2000만명의 미국인 거주자가 소유한 총기는 약 3억5700만 자루다. 1인당 1자루꼴을 넘어선다. 이 자료는 2013년 기준이다. 지금은 4억자루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한 집 걸러 한 집꼴로 총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게 총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총기 사고로 숨진 인원은 30만2000여명이다. 10년에 한 번씩 한국의 ‘세종시급’ 도시의 인구 전체가 사라지는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에서 총 맞아 죽을 확률은 한국의 78배”라고 썼다. 지난해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14년 미국의 총기사고 사망자 수와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모두 3만여명으로 거의 같다. 이는 미국에서 테러로 숨진 인원(71명)의 4200배를 넘어서는 숫자다.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적인 미국이 왜 ‘내전과의 전쟁’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미국의 역사는 ‘총기의 역사’다. 미국 대륙 발견 이후 15세기부터 동부에 정착한 유럽 이주민들에게 총기는 필수품이었다. 서부 개척 과정에서 총을 들고 인디언들과 싸웠다. 공권력이 부재했던 서부에서 총기 없이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다. 오직 ‘약육강식의 법칙’이 작동하던 시기였다. 18세기 영국과의 독립전쟁 당시 무장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진 ‘민병대’도 미 총기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반복되는 총기참사에도 미국 내부에서 꾸준히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 이유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와 ABC뉴스 조사에서 AR-15 같은 돌격용 소총에 대한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50%로 반대 의견(46%)과 큰 차이가 없었다.
 |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플로리다주 고교 총기난사 사건으로 부상당한 학생 등이 입원한 브로워드 헬스 노스 병원을 찾아 병문안을 하고 있다. 사진=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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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도 총기소유 보장..트럼프 취임 후 사법부도 ‘경직’
총기 소유의 권리는 미국 헌법에 보장돼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2조는 “규율 있는 민병은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 무장의 권리를 넘어 민병대 존재까지 합법화하고 있다. 물론 군사 행동 등 불법행위는 금지되지만, 지금도 미국 전역에는 수백여개의 민병대가 활동 중이다. 멕시코 접경지대에서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민병대가 대표적이다. 과거 로스앤젤레스(LA) 폭동 당시 한인들도 스스로 총으로 무장하고 가게로 쳐들어오려는 폭도들을 물리쳤다. 플로리다에 거주하는 한 민병대원은 “민병대는 건국 초기 미국의 상징이었으며, 그 전통이 헌법에 녹아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대법원도 2008년 논란 끝에 “수정헌법 2조가 전반적인 총기 소지의 권리 근거를 제공한다”며 “개인용 무기를 소지하는 데 까다로운 등록조건을 둬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수정헌법을 개정하기 전까지는 완전한 ‘총기규제’가 사실상 어렵다. 실제로 미국 의회가 검토 중인 ‘총기구매자 신원조회 강화 법안’이나 ‘상식적인 총기규제법’ 모두 구매자의 신원 조사 강화, 고용량 탄창과 군용 돌격소총의 금지 등을 적시할 뿐, 총기 소유 자체를 금지하는 건 아니다. 2012년 샌디훅 총기난사 사건 이후 뉴욕주, 코네티컷, 메릴랜드 등 21개의 주가 새 총기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소총의 구매를 금지하는 데 머물렀다. 이와 관련, BBC는 “트럼프 대통령은 하급법원의 공석들을 총기 소지권을 옹호하는 법관들로 채우고 있고, 이는 사법부를 총기 문제에 관해서 우파 쪽으로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총기규제 문제가 더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 있음을 예고했다.
 | | 총기난사 사건으로 17명의 학생과 교사들이 숨진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 시민들이 찾아 흐느끼며 애도를 하고 있다. 사진=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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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A 무차별 로비+11월 중간선거..‘찔끔’ 규제 나선 트럼프
미국 정부나 의회가 전혀 움직이지 않은 건 아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각종 총기 규제법안을 만들어 의회에 상정했다. 하지만 매번 허무하게 무산됐다. 전미총기협회(NRA)의 무차별적 로비 때문이다. 전미총기협회는 천문학적인 자금력으로 미국 중앙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전기총기협회는 2012년 코네티컷주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과 2016년 올란도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 사건 등 각종 총기 난사사건 이후 상정된 법안들이 의회에서 무산된 배경에는 전미총기협회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웨인 라피에르 총기협회 부회장은 “총을 가진 나쁜 사람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총을 가진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학내 총기사건을 막으려면 모든 학교에 무장한 경찰이나 보안요원을 배치하거나, 선생에게 총기 소유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각도 같다. 이번 총기사고를 ‘정신건강 탓’으로 돌렸던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생존 학생 6명과 희생자 부모 등 40여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만난 자리에선 “평균적으로 총기 난사는 3분, 경찰 대응에 걸리는 시간은 5∼8분인데, 총기에 능숙한 교사가 있었다면 사건을 빨리 끝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교직원 무장’을 해결책으로 꼽았다.
그러나 10대 청소년을 중심으로 총기 규제 촉구 집회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할리우드 배우와 감독, 방송인 등까지 동참의사를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궁지에 몰렸다. 특히 11월 중간선거에서 총기 규제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 확실시된다는 점도 부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AR-15’ 같은 반자동 총기를 자동화기처럼 발사되도록 하는 장치인 ‘범프스톡’ 매매를 제한하는 규제를 명령한 데 이어 구매 가능 연령을 현행 18세에서 21세로 올리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이번에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규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여론 무마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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