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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는 따로 있었다"...정원엔시스 정정공시 폭탄 던진 까닭은

양지윤 기자I 2022.08.01 06:06:06

정원엔시스,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
최대주주 주식 위장 분산 드러나 ''무더기 정정''
감사 선임 위해 꼼수…2대주주는 졸지에 ''3% 룰'' 적용
추가 정정 가능성…"벌점 누적에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될 수도"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코스닥 상장사 정원엔시스가 지난 2016년부터 최대주주 변경 내용을 허위로 공시한 사실이 확인돼 불성실공시 법인에 지정될 위기에 처했다. 최대주주가 지분을 차명으로 보유해 공시의무를 위반한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면서 정정공시 폭탄을 던진 탓이다.

◇차명 주식 드러나 최대주주 관련 공시 ‘무더기 정정’

31일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에 따르면 정원엔시스(045510)는 지난 달 28일 최대주주 변경 허위 공시 4건 등 공시 불이행으로 불성실공시법인에 지정 예고됐다.

지난 6월 말 25건의 무더기 정정공시를 낸 게 발단이 됐다. 정원엔시스는 2016년부터 2021년 말까지 회사 최대주주는 김현종 전 대표라고 바로 잡았다. 현재 최대주주인 박장호 자산장학재단 대표이사는 1대주주 김 전 대표의 지분 매각으로 작년 12월22일 최대주주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지난 5년간 2대주주였지만, 김 대표가 주식을 위장 분산하면서 최대주주가 된 이례적인 사례라는 게 거래소의 설명이다.

2대주주가 최대주주로 뒤바뀐 사정은 지난 2014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원엔시스 재무팀 직원이 회사 자기자본의 27%에 이르는 54억원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회사는 횡령액을 1분기 실적에 반영, 3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횡령 여파로 주가는 두 달간 곤두박질쳐 시가총액 41억원이 증발했다.

뿔난 개인주주들은 소액주주 윔스와 손잡고 정원엔시스에 투명 경영과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했다. 윔스는 박 대표 부인이 최대주주인 회사다. 양측은 이듬해 주주총회에서 감사 후보 교체 제안을 비롯해 당시 최대주주인 김현종 전 대표와 경영진을 상대로 횡령금액 손해배상 제소를 청구하는 등 이의제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2년 가까이 회사와 주주들 간 분쟁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확전되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박 대표 측은 지분을 늘리며 지난 2016년 1월 경영참여를 선언했다. 윔스는 정원엔시스 지분 9.06%를 확보하며 매입 목적에 ‘비상임감사 선임과 현금배당 의안상정 주주제안 등 경영참여’라고 신고했다. 사실상 선전포고인 셈이다. 박 대표측은 이후 지분을 지속적으로 늘려 올해 6월 말 기준 지분율은 22.06%다. 반면 김 전 대표는 반대 행보를 보였다. 2014년 32.39%까지 상승했던 지분율이 계속 감소했고, 급기야 2016년 9월 지분 10.47%를 정원엔시스 우리사주조합원들에게 장외매도하며 0%로 떨어졌다. 박 대표 측이 1대주주로 올라서게 된 배경이다.

◇최대주주 꼼수에 2대주주도 ‘3% 룰’ 덫에 걸려

문제는 김 전 대표가 주식을 차명 보유로 전환하면서 지분이 감소한 것처럼 보이는 꼼수를 부렸다는 점이다. 김 전 대표는 2015년 차명 주식 보유로 공시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올해 4월 2심에서 항소가 기각되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1심 선고가 확정됐다. 앞서 김 대표 측은 작년 4월 재판 과정에서 ‘명의신탁 거래분 실명전환 및 누락분 추가, 환수’ 공시를 통해 지분율이 23.87%라고 실토했다. 법원은 김 전 대표가 우호적인 인물을 감사로 선임하기 위해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했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은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 이른바 ‘3% 룰’을 피해가기 위해 위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봤다.

거래소 역시 김 전 대표가 3% 룰을 피해하기 위해 지분을 고의로 위장 분산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로 인해 2대주주가 최대주주로 등극하며 3% 룰의 덫에 걸리는 일이 벌어졌다. 박 대표 측은 횡령 사건이 김 전 대표 거버넌스(지배구조) 아래에서 벌어졌던 만큼 감사위원 교체를 주장했다. 주요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견제를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숨어 있는 차명 지분이 위력을 발휘하며 김 전 대표쪽 감사가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측이 최근 “정원엔시스의 실질적인 최대주주가 아니다. 최대주주로 만들기 위해 회사 측에서 허위 공시를 한 것”이라고 발언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박 대표는 국제통화기금(IMF) 때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몰락한 갑을그룹의 박창호 전 회장과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정원엔시스의 허위공시로 애꿎은 일반 개미투자자만 피해를 입게 생겼다. 정원엔시스 주가는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 다음 날인 지난 달 29일 전 거래일보다 12.78% 급락했다. 일반적으로 불성실 공시 법인 지정 예고는 대부분 지정으로 이어진다.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에 따른 부과 벌점이 5점 이상이면 1일간 매매거래가 정지되고 1년간 누계 벌점이 15점이 넘으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된다. 정원엔시스는 “이미 공시한 내용이 정정공시 대상인 경우에는 빠른 시일 내에 변경하겠다”고 밝혀 향후 추가 변경 가능성이 열려있다. 벌점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거래소 관계자는 “최대주주의 횡령 의혹이 제기되지 못하도록 2대주주보다 지분율이 낮다고 위장하고, 의결권 제한을 피해나간 경우는 보기 드문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차명 지분은 적법한 의결권 행사가 아닌 만큼 그간의 경영상 결정 사항을 두고 위법성 다툼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법적 분쟁으로 공시가 번복되고 벌점이 누적되면 그에 상응하는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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