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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첫눈에도 강렬했다. 네거필름에 직접 색을 입힌 듯했으니까. 회색 몸의 여자나 남녀 커플 주위에선 충돌하는 에너지를 감당 못하는 강한 빛이 들끓었다. 사람 몸에 페인팅을 하고 수개월간 거듭 촬영한 것을 네거티브 인화했다는 ‘보디페인팅’ 연작.
그 작품들로 작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는 ‘반전’이다. 들끓던 빛을 주인공에게 들이대자 온갖 동물이 튀어나왔으니. 살아 있는 눈빛, 몸을 뒤덮은 털 한올 한올까지 생생한 사슴·곰·사자, 또 고릴라.
작가 고상우(42)가 새롭게 시작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의 초상’ 말이다. 형체는 다르지만 방식은 비슷하다. 동물사진에 디지털 드로잉으로 색채·이미지를 더한 뒤 역시 네거티브로 인화했다고 하니. ‘샹그릴라’(Shangri-La·2020)는 그중 고릴라의 초상이다.
‘세상 모든 생명에 대한 인식’이 문득 불거졌나 보다. 그들도 영혼 있는 생명체란 걸 일깨우고 싶었다는 거다. 이를 전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동물 눈 주위에 얹은 ‘핑크색 하트’다. “너희도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존재”를 속삭인 작가의 마음이라고 할까.
11월 4일까지 서울 강남구 언주로152길 갤러리나우서 여는 개인전 ‘에볼루션’(Evolution)에서 볼 수 있다. 하네뮬레 종이에 앱손 HDR 잉크젯 프린트. 150×150㎝. 작가 소장. 갤러리나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