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 106. 돈 쓰고 욕 먹는 관광객

한정선 기자I 2018.12.04 06:00:00
캠브리지 거리(사진=이민정 통신원)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대학이 있는 도시인 케임브리지는 영국 도시 가운데 세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수 백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대학 건축물들을 감상하고 싶은 관광객들과 지식의 산실인 케임브리지대의 기운을 느껴보고 싶은 많은 사람이 케임브리지대를 방문하죠.

런던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케임브리지 메인 정류장에 내려 20여분 정도를 걷다가 케임브리지 대학 입구에 다다르면 행색과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움직임 등으로 관광객임을 단번에 알아본 펀팅(케임브리지대학 건물 사이를 흐르는 강을 작은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 서비스 종사자들의 호객 행위가 잇따릅니다.

케임브리지대 킹스컬리지(케임브리지대 내 독립된 대학 가운데 하나)를 입장하려면 9파운드(약 1만35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돈을 더 내면 가이드 투어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컬리지들도 대부분 입장료가 있습니다.

펀팅 업자들은 펀팅을 이용해 배로 대학 이곳저곳을 이동하면 펀팅 비용만 내고 컬리지들을 구경할 수 있다고합니다. 물론 펀팅을 이용하면 배에서 내려서 컬리지 곳곳을 발로 밟으며 여기저기 구경할 수는 없고 배에 앉아 대학 건물들의 외관만 구경해야 합니다.

케임브리지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카페, 음식점, 기념품 상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간이 스낵 상점들도 구석구석 자리해 있습니다. 물론 케임브리지에서 숙박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이처럼 케임브리지대는 관광객들의 입장료나 가이드 투어 수익을 고스란히 챙기고 그 도시에서 음식, 숙박, 소매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관광객들이 쓰는 돈으로 매출 증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810만명의 관광객들이 케임브리지를 찾았고, 일자리 창출 등을 포함해 8억3500만파운드 규모의 지역 경제 기여 효과를 낳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방문객의 88% 정도는 약 2~3시간가량 머무는 당일치기 방문으로 나타났습니다.

관광업 종사자들은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매출 상승에 쾌재를 부르고 있지만 케임브리지 지역 주민은 불편한 사항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특히 여름 휴가철에는 중국 등지에서 대규모 그룹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데 이들이 줄지어 걸어갈 때면 거리 혼잡이 심해집니다. 급기야 지난 10월 초 케임브리지시 관광서비스를 총괄하는 ‘비지트 케임브리지 앤 비욘드’는 휴가철 관광객을 분산하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엠마 손튼 ‘비지트 케임브리지 앤 비욘드’ 최고경영자는 “중국 등지에서 관광객들이 많게는 50명씩 방문한다”며 “관광객들은 케임브리지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후 “모든 국적의 관광객들을 환영하지만, 이 도시에 대한 그들의 경험을 향상하기 위해 관광객을 분산시키기를 원한다”며 목적은 같지만, 특정 국적의 국민을 덜 불쾌하게 만드는 식으로 워딩을 바꿨죠.

앞서 존 힙킨 전 케임브리지 시장도 ‘케임브리지뉴스’에 많은 중국인이 그룹으로 방문하면서 케임브리지가 관광객들에 의해 잠식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 이름난 관광지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 등지의 명소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중국어가 심심치 않게 들리죠. 13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중산층이 늘고 이들이 이민과 여행 등으로 해외로 눈을 돌리니 그 파급력이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외국인들, 특히 서양인들은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인들이 워낙 많다 보니 아시아인은 모두 중국인이라 여기거나 그냥 모든 아시아인을 단순히 국적 구분 없이 아시아인으로 치부하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한 국가나 대도시에서 정치적인 이유나 경제적인 이유, 문화적인 이유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 그곳에 있는 다른 아시아인들에게도 이런저런 식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미·중 무역갈등 고조, 중국 기업의 기술 빼가기 관행에 대한 유럽의 반감, 스웨덴 호스텔에서의 중국 관광객 불평 사건, 영국 보수당 컨퍼런스에서 중국 저널리스트가 보수당 관계자에게 손찌검을 한 사건 등이 겹치면서 유럽에서의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게 우호적이지 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중국어의 성조, 그룹을 지어 다니면서 중국 관광객들이 다른 무리보다 소란스럽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여행 와서 돈은 돈대로 쓰고 여행 지역 경제에도 이바지하면서 욕은 욕대로 먹는 중국인 여행객들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동시에 관광객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을 점령하고 혼잡스럽게 만들어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지역 시민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영국의 문화와 케임브리지 고유의 문화를 느껴보기 위해 방문하는 것을 막는 것은 문화교류 차원에서도 진취적인 방안이 아니라는 시각도 나옵니다.

케임브리지 중국커뮤니티센터의 웨이 순 회장은 “관광객들을 막는 것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해로울 수도 있다”며 “중국인들의 관광을 제한하기보다는 모든 국적의 관광객들이 케임브리지에서 더 많이 소비하고, 대학 이외의 곳에서도 관광하도록 권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통행의 자유가 보장된 글로벌 시대, 외국인 관광객들이 오는 것을 막기도 그렇고, 특정 국가 국민만 골라서 받을 수도 없고, 그럼에도 지역사회의 안전과 삶의 질은 지키고 싶은 도시들의 고민이 커져만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역사회도, 관광객들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해결책이 나와야 지역사회의 혼란도, 돈 쓰고 욕먹는 관광객들도 줄어들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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