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그해 ‘9·10 부동산대책’을 내놓고 연말까지 집을 사면 취득세를 절반으로 깎아주기로 했다. 신규 취득한 주택의 ‘잔금 지급일’과 ‘등기일’ 중 빠른 날이 9월 24일 이후라면 세금을 반만 내라는 것이다. 그러자 그전에 주택 잔금을 치른 계약자들의 원성이 높았다.
최근 이와 비슷한 논란이 또 불거지는 모양새다. 이번엔 부동산 중개 보수(옛 중개수수료)다. 정부 방침에 따라 매매가격 6억~9억원, 임대차 3억~6억원 등 일부 구간의 중개 보수 요율 상한이 서울의 경우 지난 14일부터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른바 ‘반값 중개 보수’다.
문제는 이 반값 중개 보수의 적용 기준이 취득세 감면 때와 같은 잔금 지급일이 아닌 ‘계약 체결일’이라는 점이다. 서울에서는 14일 이후 부동산 거래 계약을 신규로 맺은 경우에만 혜택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보다 며칠 앞서 계약을 맺고 아직 잔금을 치르지 않은 이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똑같이 집을 샀는데 우리는 왜 혜택을 못 보느냐”는 이야기다.
◇반값 중개 보수는 ‘신규 계약자’만 적용
계약 절차를 마친 중개인은 계약자에게 알선료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계약 체결 시 작성하는 중개 대상물 확인서에 중개 보수 금액을 적도록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예컨대 계약자가 단순 변심 등으로 잔금 지급 전에 계약을 파기하면 중개인은 약속한 보수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이다.
중개인이 잔금 지급이나 입주 때까지 계약자를 돕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사후 서비스다. 계약자가 잔금 지급 시 중개 보수를 내는 것도 법이 지급 시기를 그때까지 미룰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일 뿐, 중개 업무와는 관련이 없다. 만약 반값 중개 보수 적용 시점을 잔금 지급 시기로 정한다면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중개인이 일 다 해놓고 약속한 수당 받을 일만 남은 상황에서 인건비를 깎아줘야 한다.
◇부동산 과세는 ‘잔금 지급일’ 기준
그렇다면 앞서 취득세 감면 혜택은 왜 잔금 지급일을 기준으로 삼았던 걸까? 이는 세법상 취득세·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세금의 과세 기준일이 계약서상 잔금 지급일이기 때문이다. 잔금까지 내야 비로소 소유권 등 실질적인 권리가 넘어갔다고 본다는 의미다.
다만 잔금 지급 전에 소유권 이전 등기를 먼저 했다면 취득·양도일은 등기일이 기준이 된다. 또 계약서상 잔금 지급일이 아닌 다른 날에 잔금을 치렀다면 실제 잔금 지급일을 취득·양도일로 간주한다.
이 기준에 따라 세금을 덜 내거나 더 내는 웃지 못할 일도 자주 발생한다. 이를테면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는 매년 6월 1일 현재 부동산을 가진 소유자에게 부과한다. 주택 매매 계약을 4월 말에 맺고 6월 1일 이전에 잔금을 치렀다면 집 산 사람이 1년 치 재산세를 몽땅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양도세 역시 부동산 보유 기간이 한 해를 채우느냐 못 채우느냐에 따라 세금 공제(장기보유 특별공제) 폭이 달라질 수 있다.
◇양도세 특별 감면은 신규 계약분만…무임승차 방지
과거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 등을 사는 사람에게 양도세를 대폭 깎아주는 ‘떨이 판매 대책’을 내놓은 사례가 적지 않다. 이 경우 양도세 면제 혜택 기준일은 대개 잔금 지급이 아닌 ‘매매 계약일’이었다. 정해진 기간 안에 매매 계약을 맺으면 취득일로부터 일정 기간은 집값 차익이 발생해도 세금을 깎아주기로 한 것이다. 이는 세금 감면 시점을 잔금 지급일로 할 경우 의도치 않게 정책 혜택을 보는 무임승차자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게 조세 당국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정부 대책 발표 전에 부동산 거래 계약을 맺고 잔금은 아직 내지 않은 사람이 뜻밖의 횡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