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말 반도체, AI 데이터센터와 함께 피지컬 AI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의 한 축으로 선언했다.
계획에는 산업 현장의 데이터를 모으는 국가 제조데이터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숙련 노동자의 암묵지까지 데이터로 바꾼다는 구상이 담겼다. 실행도 빠르다. 이달 초에는 그 첫 실행 사업으로, 인공지능을 로봇과 장비 같은 물리 시스템에 결합하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경남과 전북에 5년간 1조 4,000억원을 투입하는 연구개발 과제의 수행 기관 공모가 시작됐다.
결단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이 사업의 성패를 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산업 현장에서 수십 년 한 가지 일을 해 온 숙련공이라고 답하겠다. 피지컬 AI의 승부는 결국 데이터에서 갈리고, 데이터는 현장에서 나오며, 그 현장을 열고 닫는 열쇠는 그들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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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만드는 국가 사업이 설계에 따라 어떤 결말을 맞는지는 이미 한 차례 지켜본 바 있다. 지난 데이터댐 사업은 대규모 재정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만들어 냈고, 국내 인공지능 생태계의 초기 학습 기반이 되어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쉬움 또한 분명했다. 실제 현장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연출된 데이터의 비중이 컸고, 사업이 끝난 뒤 시장에 남아 성장한 자산과 기업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데이터 구축이 산업으로 크지 못하고 일회성 용역에 머문 것이다.
조 단위의 예산을 다시 쓰는 지금, 네 가지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 번째 질문, 어떤 데이터부터 만들 것인가
‘제조업 데이터’라는 단위는 계획서에나 존재한다. 현장으로 내려가면 납땜과 조립과 검사는 각각 다른 기술이고, 로봇에게는 각각 다른 과제다. 2~3년 안에 상용화할 수 있는 작업부터 스킬 단위로 골라야 손에 잡히는 성과가 나오고, 그 성과가 다음 투자의 명분이 된다.
이를 제언에 그치지 않고 제도로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과제 선정 요건에 수요기업의 도입 의향 검증을 포함시키면 된다. 민간 기업이라면 당연히 거칠 시장조사를 공모 설계 안에 넣자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 그 현장은 누가 열어 주는가
로봇이 일하게 될 곳은 훈련장이 아니라 기업의 생산 현장이며, 데이터의 다양성은 오직 현장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이 사업의 숨은 주역은 자기 설비와 공정을 개방할 기업,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해 온 숙련 작업자다.
입장을 바꿔 보자. 자신의 작업을 카메라로 기록하겠다는 제안을 숙련공이 반길 이유가 있는가. 자동화가 제 일자리를 겨냥한다고 느끼는 순간 현장은 닫히고, 닫힌 현장에서는 어떤 예산으로도 데이터가 나오지 않는다.
설계가 뒤집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숙련공은 대체의 대상이 아니라 이 사업이 가진 최고의 자산이다. 수십 년 손끝에 쌓인 암묵지는 어떤 시뮬레이션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내어놓는 사람에게는 걸맞은 보상과 지위가 따라야 한다. 데이터 제공에 대한 정당한 대가, 참여 이력의 공식 인정, 로봇이 도입된 뒤 운영과 교육을 맡는 역할로의 전환 경로 같은 것들이다. 로봇에게 일을 가르치는 사람은 로봇 시대의 교사다. 이 관점이 공모 문서에 담길 때 비로소 현장이 열린다.
세 번째 질문, 만들어진 데이터는 누구에게 남는가
정부 재정이 들어간 데이터를 국가 데이터 라이브러리에 모으는 방향은 옳다. 다만 전량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설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데이터를 구축한 기업에도, 그것으로 모델을 만든 기업에도 남는 자산이 없다면 사업은 다시 일회성 용역이 되고, 용역으로는 산업이 크지 않는다.
대안은 귀속을 나누는 설계다. 일부는 개방해 국가 자산으로 쌓고, 일부는 참여 기업의 자산으로 남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개방분을 모아 국산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고, 그 모델을 현장을 열어 준 기업에 먼저 보급하는 방법도 있다.
현장 기업은 로봇을 먼저 얻고, 데이터 기업은 자산을 쌓고, 국가는 개방 데이터와 모델을 얻는다. 정부 데이터 사업을 수행해 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기업을 움직이는 것은 지원금이 아니라 사업이 끝난 뒤에도 남는 자산이다.
네 번째 질문, 데이터의 지도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필자는 T자형을 제안한다. 세로축은 깊이다. 국내 기반 산업 몇 개를 골라 스킬 단위까지 깊고 두껍게 쌓는다. 가로축은 폭이다. 범용 모델을 위해 공장 바깥의 골목 상점과 가정까지, 다양한 삶의 영역을 넓게 담는다.
관건은 이 폭을 채우는 방법이다. 찍어서 보내면 보상하는 식의 단순 수집은 품질이 관리되지 않아 예산 낭비로 끝나기 쉽다.
국민의 참여가 답이 되려면 세 가지가 달라야 한다. 참여자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취득 방법을 교육받은 사람이어야 하고, 데이터의 규격은 수집이 시작되기 전에 정의되어야 하며, 품질의 책임은 참여자가 아니라 검수하고 반려하는 운영 기관이 져야 한다.
공간과 장비와 교육을 제공하고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국민참여형이라면 T자의 가로축을 감당할 수 있다.
3년은 중간점검, 5년은 시장의 성적표
정부는 피지컬 AI의 골든타임을 3년으로 본다. 그 절박함에 동의한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사업의 기간은 5년이다.
3년 차의 중간 점검과 5년 뒤의 최종 성적표는 묻는 것이 달라야 하고, 그 구분이 없으면 조급함은 검증 없는 물량 채우기로 흐른다.
3년 차에 물을 것은 예산 집행률이 아니라 설계가 작동하고 있는가다. 수요가 검증된 스킬이 정해졌는가. 현장이 열렸는가. 기업에 자산이 쌓이기 시작했는가.
그리고 5년 뒤 사업이 끝난 자리에서는 시장이 답할 것이다. 수요가 이어지는 데이터 자산과 현장에 투입된 로봇, 그리고 데이터로 자립한 기업이 몇이나 서 있는가로.
공모는 시작됐고, 설계를 물을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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