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세계를 제패한다’ 정신 되새길 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를 지낸 양향자 전 의원은 20일 “리더십이든 팔로우십이든 기술 중심으로 가야 한다”며 “국가대표 선수로 뛴다는 사명감을 갖춘 기술 인재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양 전 의원은 그러면서 “글로벌 산업 지형을 예측하고 기획하는 작업은 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삼성전자 인사팀장으로 일했던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과거 삼성이 1등으로 빠르게 치고 나갔을 때의 원동력을 두고 “우리가 기술로 세계를 제패한다는 기술제세(技術濟世) 정신이 바탕에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3~2017년 삼성에서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한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지금 삼성전자의 상황은 중앙처리장치(CPU)에 안주하다가 인공지능(AI)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인텔과 다르지 않다”며 “기술을 중심으로 미래를 통찰할 경영진이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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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구조조정이 필요한 때라고 직접 언급한 OB들은 거의 없었지만, 대다수는 조직이 방만해졌다는 지적은 빼놓지 않았다. 황영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은 “삼성은 연못 속의 고래가 돼 버렸다”고 했고, 이근면 전 처장은 “그동안 정신적인 나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이재용 회장, 기술 경영 가치 내세워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기술 경영을 기치로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적지 않았다. 이 회장은 지난 2022년 10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취임해 오는 27일로 취임 2주년을 맞는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회장이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4주기 기일 추모식 이후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뛰어넘는 것) 전략’을 내놓을 것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황영기 회장은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 같은 이재용 회장의 뉴삼성 비전이 나와야 할 때”라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그 연장선상에서 이 회장이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과감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경영을 실천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양향자 전 의원은 “(이 회장이) 글로벌 네트워크, 신사업 투자 등에 있어서 신뢰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등기이사 여부는 형식논리에 집착하는 것이라는 의견 역시 있다. 이근면 전 처장은 이를 두고 “(실질적으로 총수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실제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그룹 전반의 속도를 높인 컨트롤타워의 필요성도 거론됐다. 삼성그룹은 지난 1959년 이병철 창업회장 당시 비서실을 설립했고, 1998년 이건희 선대회장 때 구조조정본부로 재편했다. 이후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등 이름만 바뀌었을 뿐 컨트롤타워 조직이 있었는데, 2017년 국정농단 사태와 함께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그 이후 삼성 전반의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고 계열사간 협업이 약화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양향자 전 의원은 “파괴적인 결단을 해낼 컨트롤타워가 없다면 경쟁력이 떨어지고 위기가 올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이 최근 들어 군불을 때고 있는 의제다. 그는 최근 준감위 2023년 연간 보고서 발간사 등을 통해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경영 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컨트롤타워의 재건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