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양대 사법부 수장이 모두 공석인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다가오고 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준이 부결되며 35년 만에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발생한 데 이어 10일 임기를 마치는 유남석 헌재소장 후임으로 지명된 이종석 후보자의 임명 절차가 지지부진한 상태여서다.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25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올라갔지만 향후 일정을 고려하면 유 소장 퇴임일에 맞춘 새 헌재소장의 취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법원은 이미 파행운용되고 있다. 상고심 심리에 차질을 빚고 있고, 중대 사건의 판례 변경을 위한 전원합의체 선고도 중단됐다. 안철상 대법관이 대행을 맡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 그를 포함, 두 명의 대법관이 내년 1월 퇴임하는데 대법원장 임명이 늦어지면서 후임 대법관 인선도 하염없이 미뤄지고 있다. 재판관 9명 전원이 모든 사건을 심리해 판정을 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헌재 또한 이대로라면 중요 사건 처리가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당장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신설과 관련, 이목이 쏠리는 사형제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 판단이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종합부동산세 제도와 KBS 수신료 분리 징수에 대한 헌법소원 등도 장기간 계류 상태로 남겨질 공산이 크다. 지난 9월 탄핵소추된 안동완 검사는 결정이 나올 때까지 직무 복귀 여부가 불투명하다. 법원과 헌재의 판단은 하급심 판결의 기준점이 되는 만큼 쟁점이 치열한 재판은 당분간 ‘올스톱’ 될 가능성이 높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셈이다.
사법부 수장 임명은 모두 국회 앞에서 멈춰 섰다. 대법원장 후보자 인선의 경우 거대 의석을 앞세운 민주당이 정치적 셈법에 따라 의도적으로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무조건 반대라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사법부 길들이기’,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한 고의적 재판지연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큰 흠결이 없다면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하고 동시에 헌재 소장 후보자의 청문회 일정을 신속히 진행할 일이다. 대통령실도 새 대법원장 인선 과정에서 더욱 철저한 검증을 통해 야당에 반대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