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에 거주하는 사회초년생 A(20)씨는 임신 4주차에 접어들어서야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앞이 캄캄했다. 급하게 중절수술을 할 비용이 없었던 A씨는 낙태에 대해 찾아보던 중 임신중절약 ‘미프진’을 알게 돼 바로 복용 후 자연유산했다. 그는 “다른 후기들 보면 3~4시간이면 핏덩어리가 배출되고 통증도 사라진다고 하던데 그분들과 다르게 하루하루를 통증 때문에 울면서 보냈다”며 “생리통의 2~3배 정도로 정말 아팠다”고 조심스럽게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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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지 3년이 지났지만, 후속 보완조치가 여전히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낙태가 더이상 불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합법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무법지대’ 상태가 이어지는 셈이다. 법 공백이 길어지면서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음지에서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낙태를 하기 위해선 산부인과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는 방법이 있지만, 보험 적용과 현금 마련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수술이라는 부담감에 기회비용도 크다보니 10~20대 여성들은 비교적 쉽게 낙태할 수 있는 ‘먹는 낙태약’ 미프진을 찾는다. 알약으로 생긴 미프진은 임신 10주차 이내에 5~6주 가량 꾸준히 복용할 경우 자연유산에 이르도록 하는 약물이다.
다만 미프진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가 나지 않아 판매와 구매 모두 불법인데다,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전문의의 처방과 진단 없이 복용하다 보니 미프진에 대한 정보와 복용 방법은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여성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게 전부다. 미프진을 찾는 여성들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판매자를 찾고, 우회 앱인 가상사설망(VPN)을 사용하면서 약을 구매한다.
2년 사이 미프진을 두 번 복용했다는 20대 여성 B씨는 “결혼과 임신을 할 생각이 전혀 없어 의지할 곳이라곤 인터넷에서 발견한 미프진 밖에 없었다”며 “처음 먹었을 땐 살짝 울렁거리기만 했는데 마지막 복용 땐 너무 아파서 울다 지쳐 잠들었다”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로 수술이 아닌 약물을 사용한 경우는 7.7%로, 이 중 약물 부작용으로 다시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여성들은 5.4%에 달했다. 여성들이 인공임신중절 관련 정보를 습득한 경로는 ‘인터넷 게시물 또는 온라인을 통한 불특정 대상’이 46.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의료인(의사, 간호사 등) 40.3%, △친구 및 지인(선후배, 직장동료 등) 34.0% 순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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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입법 논의는 사실상 ‘멈춤’ 상태다. 대체입법 시한이었던 2020년 말쯤부터 권인숙,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하는 안과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해주는 안을 발의했고,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낙태 허용 기간을 10주로 제안하는 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들은 관련 상임위원회에 여전히 장기 계류 중이다.
전문가들은 국회 입법이 여전히 불투명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미프진 같은 약물의 경우 초산과 노산에 따라 약물반응이 다르게 나타나고 진행시간도 다른데 구체적인 경험과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입법 도입은 위험하다”며 “낙태 입법 관련해서도 임신 몇주차를 기준으로 둘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프진의 경우 오남용이 심하다 보니 찌꺼기가 남아 병원에 다시 와서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며 “구매자도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어 되도록이면 전문의 처방에 따른 수술을 권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