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련 홍콩 현대미술관 M+ 수석 큐레이터 겸 부관장(50)은 최근 홍콩 서구룡지구 M+ 미술관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다음 달 6일 한국에서 열리는 ‘프리즈 서울’의 위상에 대해 “문화적으로 발달했을 뿐 아니라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서울이라는 브랜딩이 통한다는 의미”라며 이같이 밝혔다. ‘아트 바젤’과 함께 세계 양대 아트 페어로 불리는 ‘프리즈’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함께 서울에서 행사를 개최한다.
|
정 부관장은 한국인 최초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를 지냈다. 2013년 9월 홍콩으로 건너와 M+ 개관 작업에 합류했다. 그는 영국 미술전문 매체 ‘아트리뷰’가 매년 선정하는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문화의 불모지’라 불렸던 홍콩이 수년 사이 아시아의 아트 허브가 되는 과정을 상세히 지켜본 그는 서울이 홍콩을 벤치마킹 하기보다는 서울만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관장은 “지난 3년간 홍콩이 굳게 닫혀 있어 더이상 미술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곳이 끝났기 때문에 다른 곳이 떠오른다’는 내러티브는 미술계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서울은 서울만의 독특함을 발휘해 홍콩과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콩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건설된 M+ 미술관과 고궁박물관 등 서구룡문화지구와 아시아 최대 규모 아트 페어 ‘아트 바젤 홍콩’, 필립스·소더비·크리스티의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가 홍콩을 아시아의 아트 허브로 바꿔 놓았다면, 서울은 홍콩과는 다른 저력이 있다는 게 정 부관장의 설명이다.
그는 “서울은 홍콩보다 작가 수가 월등히 많을 뿐 아니라 미술 대학을 비롯한 미술 교육이 상당한 수준으로 자리를 잡고 있어 컬렉터와 미술계 커뮤니티를 두텁게 만들고 있다”며 “이제는 비즈니스를 하기에도 좋은 환경이 조성돼 소위 ‘장사가 되는 곳’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지도 20년이 넘었다”며 “아시아의 예술 허브가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정 부관장은 향후 M+의 기획 방향과 관련해선 “최근 생태계 문제와 지속 가능성, 디지털 문화, 글로벌 사우스라는 네 가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특히 북반구 중심 사고를 뒤집어 남반구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글로벌 사우스의 관점에서 문화·예술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사이에 있는 홍콩은 지정학적으로 중심과 변방을 오가며 사유할 수 있는 관점을 주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정 부관장은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UC버클리) 대학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2013년 홍콩 M+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