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그로스 개인전 ''드림 파일''
12점 회화·한 편 영상 작품 선보여
"하이테크·낭만주의 충돌과 대조 담아"
9월 16일까지 파운드리 서울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보라색 콧수염에 노란색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입들. 정중앙에는 에두아르 뭉크의 ‘절규’와 닮아있는 이모티콘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림의 뒤쪽으로는 붉은색의 불꽃과 중세시대 기적을 다룬 16세기 책의 텍스트도 보인다. 어수선하게 흩어진 색감과 그림들의 조합이 불길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림 아래에는 독일어로 “그래서 이제 어쩌란 말인가(Und Jetzt)”라고 쓰여있다. 종이에 오일스틱을 활용해서 채색한 ‘Time To Go’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긍정·부정 등 극한의 감정을 매일 느끼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했다.
독일 작가 마틴 그로스(39)의 국내 첫 개인전 ‘드림 파일(Dream File)’이 오는 9월 16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파운드리 서울에서 열린다. 그로스는 이미지, 기호, 사운드 등 여러 형태의 정보를 감각적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일반 글자뿐 아니라 유튜브에 올라온 댓글, CCTV 화면에 쓰인 텍스트 등을 잘라낸 뒤 캔버스에 조합한다. 2021년 프리즈 런던에 작품을 출품했고, 최근 예술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12점의 회화와 한 편의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뒤섞인 현실을 담은 작품들을 전시장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를 위해 내한한 그로스는 “낭만주의와 하이테크 사이의 충돌이나 대조 등은 내 작품의 중요한 주제”라며 “디지털 시대에 모두가 공감하는 감정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 마틴 그로스의 ‘Time To Go’(사진=파운드리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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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다. ‘하이퍼텍스트’는 ‘hyper’(초월한)와 ‘text’(문서)로 이루어진 단어로 1965년 테드 넬슨이 만든 용어다. 책이나 일반 문서에서 순차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던 방식과 달리 하이퍼텍스트는 링크로 연결된 문서들을 이곳저곳 원하는 위치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방식은 작가의 작업 방식과도 연결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7m 높이의 거대한 벽에 송출되는 대형 애니메이션 작품 ‘Oh Sega Sunset’이 눈길을 끈다. 5분 20초 길이의 영상으로 검정 배경에 주황색 영어 문구가 끊임없이 흐른다. 전혀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문장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바쁜 현대인들의 모습과도 같다. 그로스는 “영상에 등장하는 텍스트들은 그동안 모아왔던 시 구절이나 인용문, 키워드를 결합한 것”이라며 “문구들은 다양한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각각의 형태들이 한 공간에서 만난 모습이 하이퍼텍스트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 마틴 그로스의 애니메이션 작품 ‘Oh Sega Sunset’(사진=파운드리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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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하단의 커다란 눈이 인상적인 ‘머치 소 유 러브 아이(Much So You Love I)’도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했다. 온라인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줄임말 ‘ILYSM(I Love You So Much)’를 거꾸로 작성한 제목이다. 그림 옆으로는 ‘아이 필 라이크(I Feel Like)’로 읽히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그로스는 “한 형태의 정보를 다른 매체로 전환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아이 러브 유 소 머치’는 진정한 의미로 쓰이기 보다는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면서 의미가 퇴색된 면이 있다. 이를 반대로 보여주면서 문장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모든 작품은 프레임이 따로 없이 원형 그대로 벽에 붙어 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다 가까이에서 느끼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로스는 “작품을 볼 때 해답을 주고 ‘어떤 식으로 느껴라’ 등의 설명은 하지 않는다”며 “각자의 시선과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작품을 감상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 마틴 그로스(사진=파운드리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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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틴 그로스 개인전 ‘드림 파일’ 전경(사진=파운드리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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