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은 “윤석열 정부의 교육·노동·연금 등 3대 개혁은 타이밍과 아젠다가 맞다”면서도 “다만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다툼과 혼선이 있어 생각했던 것만큼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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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개혁 불씨 살릴 묘책은
노동개혁 과제는 크게 3가지다. 근로시간 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편, 노사법치주의다. 정지원 상임고문은 “근로시간의 경우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과제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임금체계 개편의 경우 오래 일할수록 보수가 높은 구조인 ‘연공제’를 직무성과급제로 개편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런데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근속연수가 짧아 이들에게 임금체계 개편은 사실상 먼 나라 이야기에 가깝다. 노사법치주의도 그동안 노조에 면죄부를 줬던 것을 앞으로 정부가 법대로 해나가겠다는 것인데 현재 근로자의 노조 가입률은 14%에 불과하다. 전체 근로자를 아우르지 못하는 의제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해 근로자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당초 정부의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근로자들이 1주일에 52시간까지만 일하게 한 현행 제도를 바쁠 땐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대신 장기 휴가 등을 이용해 쉴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특히 ‘주’ 단위의 연장근로 단위를 노사 합의를 거쳐 ‘월·분기·반기·연’으로도 총량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분기 연장근로시간은 현재 156시간에서 140시간으로 10%가 줄어든다. 반기로 보면 312시간 연장근로 해야 하는 것이 250시간으로 20% 줄어든다. 연간으로 보면 30% 정도 연장근로 한도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하는 것 아니냐”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정 상임고문은 “근로시간 제도를 세련되게 만드는 과제인데, ‘유연화’라는 이름을 가져오면서 장시간 근로에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비치고 말았다”며 “정책 입안자는 억울하겠지만, 설명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규모가 영세한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일은 늘어나고 정당한 보상은 받지 못할 것 같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정 상임고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무여건이 현실적으로 다름에도 이런 부분이 반영되지 않다 보니 근로시간 칸막이를 없앤 혜택이 대기업과 공공기관 근로자에게만 쏠리는 게 아니냐는 상대적 박탈감도 (69시간제 반대에) 담겨 있다는 걸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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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근로 주 12시간은 1953년 근로기준법이 처음 제정된 이후 70년째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당시만 해도 주 6일 근무제여서 소정근로시간 주 48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이 적용돼 주 60시간이 일반적이었다. 이후 소정근로시간은 1989년 44시간, 2003년 주 40시간에 단축됐지만, 연장근로시간 만큼은 12시간이 변함없이 유지됐다.
정 상임고문은 “아마도 주 6일을 적용해 하루 2시간씩 연장근로시간을 산정해 1주에 총 12시간까지를 연장근로가 가능하다고 본 것 같다”며 “그렇다면 주 5일제인 현 상황에선 연장근로시간도 주 10시간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이를 적용하면 연장근로시간을 한 달에 8시간, 1년 96시간이나 줄일 수 있다. 정 고문은 “연장근로시간 축소에 정부가 보다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 관심이나 MZ세대의 수용도도 높아질 것”이라며 “꺼져가는 노동개혁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 인구 감소…女 일자리 유지가 답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인구감소에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50년 대한민국 인구가 약 4577만1000여 명으로, 지난해(약 5181만 6000여 명)보다 11.7%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2050년 생산가능인구는 2398만4000여명으로, 지난해보다 34.8%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생산인구감소 속도가 총인구 감소보다 약 3배 빠른 것이다.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 비중이 1% 감소하면 GDP는 0.59% 줄어드는데 2050년 대한민국의 GDP는 2022년 대비 28.4%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정부는 위기에 봉착하기 전에 노동구조 대수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정 상임고문은 노동개혁을 통해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 고령자와 여성이 다시 일터로 복귀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출산과 육아가 일하는 여성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고문은 “워킹맘이 계속 일할 수 있는 노동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경력단절 후 다시 일터에 복귀시키는 것보다 유지하게 해주는 게 더 쉬운 방법”이라고 짚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질수록 출산율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스웨덴은 경단녀 근절을 위해 공보육제도 정비, 자녀양육부담 경감 등을 중점 추진해왔고 여성 경제활동참여율을 2021년 80.8%까지 끌어올렸다. 출산율도 2020년 1.66명으로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여성이 사회활동을 유지하면서도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경력단절을 우려한 결혼· 출산 기피를 없앤 것이다. 참고로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은 59.9%다. OECD 국가 중 31번째다.
그는 “여성 근로자 확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며 “모성보호 차원에서 근로시간 단 축 등 정부 정책을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현장에 버스노선이 하나 생기는 것까지 이뤄져야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모두가 참여한다면 작은 해법을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이 원하는 노동개혁을 만들어가기 위해선 방법부터 바꿔야 한다고 봤다. 지금까지 노동개혁을 주도해온 것은 정부였다. 1996년 김영삼정부 이후 크고 작은 총 6번의 노동개혁이 추진됐다. 근로자 파견제 도입·시행, 기간제 도입, 복수노조 전면 시행, 주 52시간제 시행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번이 정부주도의 7번째 노동개혁이다.
정 고문은 “우리나라 노동개혁은 현장 목소리가 위로 닿는 바텀업(상향식)이 아닌 정부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과제를 선정하고 전문가를 통해 솔루션을 찾아가는 탑다운(하향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노사가 유불리에 따라 찬반 논쟁을 벌이며 절반의 결과를 얻는데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과제를 발굴하고 바텀업방식으로 노동개혁과제를 발굴 추진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국민 공감대가 더 잘 만들어질 수 있다”며 “생산자가 잘 만들었다고 만족하는 것보다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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