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달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권이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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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장관은 그러나 “당장은 정부라는 수요처가 확보되는 것이니 농민들이 든든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농가와 농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고 지적했다.
쌀 생산을 줄여야 하는 상황인데도,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 매입한다면 초과 생산이 더욱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올해만 해도 쌀 생산량은 376만 4000톤으로 전년대비 3.0% 줄었지만, 여전히 수요량(360만 9000톤)보다 15만 5000톤이나 많은 상황이다.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먹거리가 다양화하면서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기는데 재정이 낭비되면서 정작 청년농, 스마트팜 육성 등 농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 실탄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시장격리가 의무화될 경우 2030년까지 연평균 초과생산 물량이 46만 8000톤 수준으로 늘어나고 이를 매입해 처분(3년 보관후 주정용 판매 가정)하는 데는 연평균 1조 443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했다.
정 장관은 “수요가 줄어드는 쌀 생산에 농민들을 붙잡아두기보다는, 밀가루 대체품종으로 각광받고 있는 가루쌀(분질미) 재배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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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와 농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쌀 농사 중심의 농업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데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를 되돌리는 것이다. 쌀 수요는 계속 줄어 정부가 다른 작물로 재배를 유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초과생산량 매입을 보장하고 나서면 농민들은 쌀 농사를 떠나기 어렵다. 정부가 수요처가 된다는 게 농민 입장에서 당장은 좋을 수 있지만, 이는 결국 쌀 공급과잉 상황을 심화시키고 쌀값도 어느 수준에서 더 오르지 않는 고정가격을 형성해 농가 소득 증대에도 도움되지 않는다. 농업 예산이 한정돼 있는 상태에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데 돈을 쓰느라 정작 청년농 육성 등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곳에 돈을 쓰지 못하게 된다는 것도 문제다. 너무 답답하다.
-야당을 설득할 복안이 있나.
△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시장격리 의무화와 함께 쌀 과잉 생산 방지를 위해 다른 작물로 전환할 때 농가를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야당도 결국 목적은 쌀 수급균형을 회복하자는 것이고, 일시적으로 쌀 과잉이 발생할 때 시장격리를 하자는 것으로 정부가 추구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정부는 시장격리를 의무화할 때 부작용이 크게 우려되는 만큼 지금처럼 시장격리를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도록 재량으로 두자는 거다. 생산 조정 사업의 범위나 규모는 확대하면서 시장격리는 재량으로 두는 방향으로 계속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농민들을 설득할 카드가 있나.
△가루쌀 재배 지원이다. 현재 논에는 벼 이외의 작물을 심기 어렵다. 다른 작물을 심으려면 흙과 배수로 등을 새로 하는데 돈이 들기도 하고, 논을 기반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직불금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가루쌀은 논에 그대로 심으면서도 완벽한 이모작이 가능하다. 가루쌀은 일반 쌀과 비교해 한달 늦게 심고, 7~10일 가량 먼저 수확한다. 일반 쌀을 농사짓는 것보다 생산비를 30%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내년부터 전략작물직불제를 통해 밀 등과 가루쌀을 이모작하는 경우엔 1ha당 250만원, 가루쌀만 재배하는 경우엔 100만원을 지원한다. 가루쌀 생산단지 모집에 당초 모집 목표(2000ha)를 1.6배 초과해 신청이 들어올만큼 농가들의 관심도 크다.
-가루쌀 재배가 계속되려면 수요가 있어야 할 텐데.
△현재 가루쌀 가공업체 12개소에서 약 115톤을 활용해 식빵, 카스텔라, 맥주 등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수요는 꾸준하다. 본격적인 산업화를 위해 식품기업들이 라면, 만두피 등 다양한 제품으로 개발해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올해와 내년에 가루쌀을 대량 제분해 실수요업체에 직접 제공하고, 2024년부터는 제품 대중화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가루쌀은 밀가루와 성질은 비슷하면서도 글루텐이 없어 건강한 식재료에 관심이 많은 해외시장으로 수출도 가능하다. 현재 글루텐프리 시장은 80억달러 규모인데,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익직불제 예산을 5조원까지 늘린다고 했는데, 추진 현황은.
△직불제 예산은 올해 2조 4596억원에서 내년 정부안은 2조 7999억원으로 늘었다. 이밖에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 보전을 위한 탄소중립직불 도입과 친환경직불 확대 및 개편, 청년농 지원 강화 등 향후 직불금 개편 방안을 농업계와 함께 논의 중이다. 연말까지 직불제 확대를 위한 로드맵을 구체화해 발표할 예정이다. 직불금 5조원 확대가 공약인 만큼, 재정당국과 협의해 필요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을 막기 위해 질병관리등급제 대상 확대도 검토하고 있나.
△산란계 농장에서 시행 중인 질병관리등급제로 농가들의 자율 방역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다. 방역관리 수준이 높은 농장에 예방적 살처분 제외 선택권을 부여하는 대신 해당 농가에서 AI 가 발생하면 살처분 보상금을 깎는 방식이다. 참여 농가들은 상당히 경각심을 갖고 방역을 관리하고 있다. 다만 질병관리등급제를 육계 농장까지 확대하는 방안은 현재로선 검토하고 있지 않다. 육계 농장은 대부분 기계화가 이뤄져 사람의 출입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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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양파, 마늘, 사과를 대상으로 온라인 도매를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뒤 현재 온라인 도매 품목이 18개로 늘었다. 온라인 거래소에선 거래 품목의 스펙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단가가 정해지면 산지에서 직접 배송하는 형태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시범사업 과정에서 온라인 거래소에서의 마늘과 양파 거래량이 전체 32개 공영도매시장을 통틀어 각각 3위, 4위를 기록할 정도로 성과가 있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 말 온라인 거래소를 본격 출범해 청과류 전체를 취급할 예정이다.
-개 식용금지와 관련한 논의는 어떻게 되가고 있나.
△개 식용금지 방향이 맞지만, 이를 어느 시점부터 정부가 강제하는 방식은 맞지 않다고 본다.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에 업계 관계자와 동물 보호 단체, 관련 전문가 등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원회에서 논의를 하는 게 맞다. 금지를 하더라도 유예 기간을 미리 예고해 개 식용과 관련한 관계자들이 업종 전환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에 나설 것이다.
◇정황근 장관은…
△1960년 충남 천안 출생 △대전고 △서울대 농학과 △국방대학원 △기술고시 20회 △농림부 농업정책국 농촌인력과장·총무과장·식량생산국 친환경농업정책과장 △농림부 혁신인사기획관 △농림수산식품부 대변인 △농림수산식품부 농촌정책국장· 농어촌정책국장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전문위원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실 농축산식품비서관 △농촌진흥청장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초빙교수 △국가농림기상센터 이사장 △농협경제지주 사외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