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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현 김정남 기자] 때아닌 글로벌 환율전쟁 이슈가 불거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어디까지 내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거의 10년 만에 세 자릿수를 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박대근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미국이 달러화 약세를 원한다면, 원·달러 환율 하락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축통화국’ 미국의 힘
지난 25일은 독보적인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힘을 새삼 실감한 날이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의 ‘약(弱)달러 용인’ 발언이 나왔을 때였다.
이는 곧바로 달러화 약세, 여타 통화 강세로 나타났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2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11.6원 하락한(원화 가치 상승) 1058.6원에 마감했다. 3년3개월 만에 최저치일 정도로 급락(원화 가치 급등)했다.
원화 뿐만 아니다. 유로화 가치도, 일본 엔화 가치도 급등했다. 유로·달러 환율은 3년1개월여 만에 최고치(유로당 1.2404달러·유로화 가치 상승)로 뛰어올랐다. 달러·엔 환율은 4개월여 만에 최저치(달러당 109.18엔·엔화 가치 상승)를 기록했다.
환율전쟁 관측이 나온 것은 그때부터다. 미국이 노골적으로 달러화 약세를 조장한다면, 다른 국가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달러화 대비 자국 통화의 가치가 높아지면, 자국 산업계의 가격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마침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가 같은날 열렸고,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므누신 장관의 발언을 비판했다. 파장이 커지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강(强)달러를 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시장은 미국이 달러화 약세를 원한다고 보고 있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도 수출 기업에 유리하게 가려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달러화 가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직후 소폭 상승했을 뿐 곧 하락 전환했다. 26일(현지시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89.073으로 마감했다. 3년1개월여 만의 최저치다.
◇원·달러 환율 더 내릴듯
원·달러 환율도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약달러를 원하면, 우리 정부의 대응 방안은 사실상 없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대근 교수는 “미국이 달러화 약세 정책을 추진한다면 (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당초 원·달러 환율 예상치를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올해 중 원·달러 환율 하단을 1050~1060원이라고 봤다”며 “그런데 더 아래까지 열어둬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당장 현재 1060원대에서 1050원대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세 자릿수 환율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두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약달러가 가속화하면 위험선호 심리가 다시 불붙을 수 있다”면서 “올해 1000원이 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원화는 대표적인 신흥통화 중 하나로, 위험자산으로 분류된다.
세 자리 수 환율은 2008년 4월28일(996.6원) 이후 10년 가까이 볼 수 없던 ‘생소한’ 레벨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2006년 1분기(평균 976.38원)부터 2008년 1분기(956.92원)까지 2년여간 줄곧 900원대였다. 2000년대 들어 세 자리 수 환율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건 이때가 유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