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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물가는 강력한 외부요인 커…정부 정책적 대응 한계”
9일 이데일리가 국내 주요 경제전문가 5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부 물가정책 진단’에 따르면, 이들 중 4명은 최근 고물가는 강력한 외부요인에 따른 것으로 정부가 사실상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봤다. 정부의 물가정책·대응의 실패로 발생한 고물가로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 물가는)정부가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 어찌할 수가 없다. 해외에서 공급가격을 올렸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중동전쟁으로 인플레가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며 “종합적으로 볼 때 정부가 물가정책에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권희진 KB증권 수석연구원 역시 “신선식품 등이 비싸지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도 비슷한 문제”라며 “정책적 대응은 분명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도 “지금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물가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전체적인 물가가 매우 높진 않으나 선거철에 너무 부각된 것”이라고 봤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6%대였던 물가를 3%대로 낮췄으니 통계적으로는 물가를 안정을 시킨 것이 맞다”면서도 “신선채소·과일류 물가는 다소 아쉽다”고 평가했다.
반면 정부가 내수침체 대응을 위해 상반기 집중 재정투입을 한 것이 오히려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는 SOC 사업 등을 중심으로 올해 재정 65%(350조원)를 상반기 조기 집행 중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적자재정 상황에 빠르게 돈까지 풀고 있어서 총수요가 세다”며 “물가가 잡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과일의 계절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대응이 부실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 무제한 투입’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대응’이라는 평가에 조금 더 힘이 실렸다.
윤증현 전 장관은 “지금은 안정자금을 투입해도 안해도 걱정이 있다”며 “선거를 앞두고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기용 교수 역시 “물가가 어려울 때 일시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식 명예교수는 “과일 수입마저 어려운 상황에서 불가피한 궁여지책”이라면서도 안정자금이 소비자가 아닌 유통단계에 투입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했다. 가격 인하효과가 떨어지고, 혜택이 일부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반면 우석진 교수는 “물가가 잡히지 않는다고 재정을 무제한 투입하는 것은 수요를 자극하게 만들어 결국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물가를 잡는 대책도 아니고 시장에 좋지 않은 시그널을 줄 것”이라고 반대했다. 권희진 선임연구원 역시 “총수요 자극의 측면이 더 큰지, 소비 진작의 효과가 더 큰지에 대해선 따져볼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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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도 되는데 사과는 왜?’…사과수입 필요 공감대 커
먹거리 물가 상승을 이끈 사과 등 일부 과일에 대해서는 수입이 필요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농민단체의 반발 및 방역 우려 등이 있으나 똑같이 병충해 우려가 있는 포도는 수입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수입을 거부한 근거가 빈약했다는 지적이다.
윤증현 전 장관은 “사과 생산이 이렇게 나쁠 때는 빨리 수입을 했어야 했다. 농작물에서 피해가 있다면 해외에서 빨리 수입을 해서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며 “물가정책의 수요자는 농민뿐만 아니라 전국민”이라고 지적했다. 홍기용 교수는 “국산과일 육성을 위해 수입을 규제하는 것이 맞는지는 상당히 고민할 과제”라며 “정부가 쓸 수 있는 물가 안정수단이 별로 없기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희진 연구원 역시 “수요를 늘리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물가 문제”라고 언급했다.
사과 수입의 필요성에 공감한 김정식 명예교수도 “포도 등 다른 과일도 수입하는데 사과만 못하는 것은 이상하다”며 “다만 사과 생산농가가 새로운 품종을 개발토록 세금감면·금융지원 등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우석진 교수는 “사과만 수입을 열어주면 배는 왜 안되냐는 질문이 나올 것”이라며 “전체 무역협상에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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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물가 정점 ‘설왕설래’…“유가·환율 지켜봐야”
다만 정부의 주장대로 3월이 연내 물가의 정점이 될 것이란 예상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권희진 선임연구원은 “3월이 정점이라는 정부평가에 동의한다. 하반기에는 2%대로 수렴할 것”이라며 “지난해 기저효과가 워낙 크다”고 말했다. 윤증현 전 장관도 “3~4월이 지나면 물가가 좀 안정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다만 외생변수인 유가 등이 흔들리면 다시 어려워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반면 홍기용 교수는 “물가가 내려갈 것으로 보지 않고 유지되거나 올라갈 불안요소가 더 크다”며 “지금 국제적으로 보면 미국도 아직 물가가 안정화 되지 않았고, 가을에 공공요금 인상도 있어서 체감 물가가 다시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석진 교수 역시 “정부의 전망이 실현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원자잿값 상승 부담이 커지는 기업·소상공인을 위한 대책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윤증현 전 장관은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노력했다면 기업·소상공인도 원가 절감 혜택을 받았을 것”이라며 “정부가 이들까지 지원할 여력도 없다”고 말했다. 반면 홍기용·김정식 교수는 정부가 생산자들의 인건비 절감을 위해 최저임금의 지역·산업별 차등화 및 외국인노동자 공급 확대 등에 힘쓸 것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