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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빛은 그 자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명확하고 열려 있으며 분명하게 전달된다.” “전자적인 빛은 단지 도구일 뿐이다. 나는 이것이 신과 연관되거나 사회적으로 해석되는 환상을 원하지 않는다”(댄 플래빈의 ‘단상’ 중에서).
‘빛’이란 건 늘 특별한 존재고 대상이었다. 거대한 어둠에 끼얹은 한 줌 희망 같은. 그런데 이 격한 의미와 가치를 그저 ‘빛’ 하나로 뭉뚱그리자고 하니. 어차피 경외감 듬뿍 얹힌 자연 빛은 아니란 건가. 그저 볼품없이 기다랗기만 한 산업용 빛, 이름하여 ‘형광등’뿐이라고. 그런데 이 형광등, 단순치가 않다. 산업사회의 한 소재,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품을 대변하던 그것으로 누구도 상상치 못한 ‘조형언어’를 뱉어냈으니.
미국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라 불리는 댄 플래빈(1933∼1996) 얘기다. 그가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월드타워 롯데뮤지엄에 ‘댄 플래빈, 위대한 빛’ 전을 펼쳤다. ‘한국 현대미술의 메카’를 내건 롯데뮤지엄의 개관전 작가로 전격 초대받은 것이다. 롯데뮤지엄은 플래빈의 ‘특별한 빛’을 끌어들여 본격적인 ‘대기업 미술관’ 대열에 합류했다. 롯데그룹 산하 롯데문화재단이 롯데월드타워 7층 전관 1320㎡(약 400평) 규모를 미술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킨 공간이다. 한광규 롯데문화재단 대표는 “국내외 거장부터 신진작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이라며 미술시장을 향한 출사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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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만으로 40m 광활한 녹색공간
“내 ‘제안’은 주로 실내에 긴 형광등을 배치하는 기계적인 작업이었다. 알 만한 사람들이 그것을 조각이라고 잘못 분류했다.” 말이 좋아 ‘빛’이지 처음부터 한눈에 꽂혔을 리가 없다. 미술관계자는 물론 관람객도 우왕좌왕했다. 장난 같기도 했고 거저먹자는 것처럼도 보였다. 어찌 보면 1917년 마르셀 뒤샹이 세상에 던진 ‘남성용 소변기’ 이후 뉴욕발 최대 쇼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플래빈이 의도한, ‘모더니즘의 엘리트적 배타성’에 대한 도전은 먹혀들었다. 규격화하고 단순한 재료를 사용해 최대한 작가의 흔적을 빼내버리는 미니멀아트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1961년 뉴욕에서 연 첫 개인전부터다. ‘아이콘’이란 전자적 빛으로 빚은 콜라주형태의 부조시리즈를 내놨다. 이를 기점으로 형광등은 플래빈의 작품세계를 뚫는 무기이자 가능성이 됐다. 2.4m 형광등 한 줄을 벽면에 비스듬히 사선으로 설치한 작품 ‘1963년 5월 25일의 사선: 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1963)는 형광등 하나만을 쓴 그의 첫 작품이다. 오브제, 또 회화적 효과를 내는 색채로서 형광등을 내세운 이 실험은 이후 그의 ‘빛 작업’에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 빛 자체뿐만 아니라 빛의 색, 빛이 놓일 공간까지 창조해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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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5월 25일의 사선’ 외에 전시는 플래빈이 1963∼1974년 제작한 형광등 초기작 14점을 들여놨다. 60㎝부터 2.4m까지 달하는 백색 형광등을 수직 방향으로 조합한 ‘블라디미르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1974) 2점을 비롯해, 모서리가 만나는 벽면에 두 줄의 형광등으로 사각프레임을 만들고 백색·황색·푸른색 등을 부여한 ‘무제’(1966∼1971)도 세웠다. 그중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무제: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1973)다. 1.2m 형광등 348개를 60㎝ 간격으로 붙여 장장 40m에 이르는 장구한 녹색의 빛 장벽을 쌓았다.
△롯데문화재단 큰 그림 완성? 판은 깔았으나…
잠실 석촌호수에 띄운 거대한 노란오리 ‘러버덕’(2014), 눈 감은 달을 담근 ‘슈퍼문’(2016), 백조가족을 내려 놓은 ‘스위트 스완’(2017). 이들은 롯데가 추진해 성공시킨 대표적인 공공미술이다. 하지만 미술관에 들여놓는 현대미술은 광범위한 대중을 상대로 한 공공미술과는 엄연히 다르다. 원체 다양한 가지를 뻗은 데다가 섞이지 않는 ‘타인의 취향’까지 선명하다.
롯데가 시작하는 현대미술에 대한 도전이 과연 공공미술을 넘어선 성과를 낼까. 롯데뮤지엄은 매년 3∼4회 세계 거장의 기획전은 물론 국내 신진작가를 아우르는 역동적인 현대미술의 흐름을 짚겠다는 야무진 목표를 내놨다. 한 대표는 “한국 젊은 작가에 대한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면서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적인 작품을 내보일 것”이라며 결코 만만치 않은 두 트랙의 방향성을 동시에 제시했다.
미술관 특히 ‘대기업 미술관’이 들어설 때 관심을 끄는 소장품에 대해선 “컬렉션 중”이라며 에둘렀다. 실제 신동빈 그룹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롯데문화재단 컬렉션은 따로 소개된 것이 없다. 결국 롯데뮤지엄은 당분간 소장품 상설전보다 기획전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방식은 대기업 미술관 중 막강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삼성미술관 리움’보단 사진·설치 등 젊은 취향을 겨냥해온 ‘대림미술관’의 방식과 유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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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뮤지엄을 오픈한 롯데문화재단은 2015년 신 회장과 롯데물산·롯데쇼핑·호텔롯데 등 3개 계열사가 200억원을 출연해 출범시켰다. 2016년 8월 개관한 롯데콘서트홀이 그 첫 성과물이다. 이번 미술관으로 롯데는 공연과 미술을 양 날개로 문화콘텐츠사업의 주요 거점을 확보한 셈이다. 한 대표는 “롯데문화재단의 큰 그림이 완성됐다”며 적잖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제 역시 만만치 않다. 롯데월드타워란 대형 쇼핑공간을 찾은 손님을 관람객을 끌어들일 거란 청사진을 냈지만 역으로 미술관이 상업공간에 묻힐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현대미술’ 외에 독특한 색깔을 내지 못한 것은 약점이다. 이대로라면 또 하나의 ‘구색 맞추기 용’ 대기업 미술관에 그치지 않을 거란 보장은 힘들다. ‘신진작가 발굴’이란, 어느 미술관이나 내세우는 비슷한 테마를 들고 나온 점도 우려스럽다. 롯데월드타워 7층 전관이란 규모도 자랑거리만은 안 된다. 타워 안이라 어쩔 수 없다는 ‘최고 층고 5m’는 결정적인 핸디캡으로 꼽힌다. 최근 현대미술품은 천장까지 활용해 더 높고 커지는 추세다.
크고 작은 얘깃거리를 만들어내며 관람객을 맞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술이 그리 만족스럽진 않다. 국내 처음 내보인다는 플래빈의 작품세계, 롯데뮤지엄에 쏠린 관심 둘 다를 충분히 해소할 만큼 전시가 따라주질 못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감동 받을 마음은 열어뒀으나 그 안을 채울 결정적 ‘한 방’이 부족하단 얘기다. 전시는 4월 8일까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