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상에 올린 단 두 장의 그림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며 감동을 선사했다. 대지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튀르키예 국민에겐 위로를, 대한민국에는 73년 전 한국전쟁 당시 받았던 도움을 상기시켰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명민호 일러스트레이터다. 지난 10일 그가 자신의 사회적관계망서비스(이하 SNS)에 올린 튀르키예 강진을 애도하는 그림은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게재 5일 만에 36만9530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1만2871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리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명민호 작가는 15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그저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고 SNS에 올렸는데 생각보다 큰 반응에 놀랐다”며 “대지진으로 튀르키예의 많은 것이 무너졌는데 사람들의 마음만큼은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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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발생한 강진으로 일주일 동안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사망한 희생자는 4만 명을 넘어섰다. 21세기 들어 역대 6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자연재해로 기록됐다. 한국 정부가 파견한 긴급구호대 110여명은 지난 9일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 급파돼 구조활동을 시작했다.
명 작가가 이번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가슴을 울린 한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사진 속에는 사망한 딸의 손을 붙잡은 아버지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숨진 딸의 손을 차마 놓지 못하는 부성애에 전 세계가 울었다. 명 작가는 “죽은 딸의 손을 잡은 아버지의 모습과 한국구조대가 활약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며 “대지진으로 인해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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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그림은 튀르키예 현지 매체를 통해 알려졌고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튀르키예 주요 일간지 줌후리예트는 “한국과 튀르키예 합작 영화 ‘아일라’가 떠오른다”고 그의 그림을 평했다. ‘아일라’는 한국전쟁 당시 터키군으로 참전했던 슐레이만 딜빌리아와 그가 구한 아일라(김은자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다. 튀르키예의 또 다른 매체도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가 73년 전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지원했던 튀르키예의 희생을 잊지 않고 튀르키예 국민을 위로했다”고 전했다.
한국과 튀르키예의 인연은 매우 특별하다. 튀르키예는 한국전쟁 4대 참전국 중 하나다. 튀르키예는 한국의 참전 요청에 발빠르게 대응했다. 당시 1만1212명을 한국에 파견했다. 미국과 영국 등에 이어서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이었다. 파견군 중 1005명이 전사했고, 이중 유해 462구는 부산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명 작가는 “튀르키예는 한국 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많은 도움을 주고 큰 희생을 했던 형제의 나라”라며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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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작가는 9년차 일러스트레이터다. 다양한 일상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을 2015년부터 SNS 등에 올리고 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클로징 일러스트를 맡았다. 지난해 12월에는 그간 그린 그림들을 엮은 에세이 ‘빛나는 것을 모아 너에게 줄게’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의 그림들은 우리 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제발, 제발’을 외치며 불길 속에서 어린아이를 구조하는 소방관, 늙은 아내를 등에 업고 걸어가는 할아버지, 화장실에서 끼니를 때우며 “엄마 걱정 말어~”라고 말하는 환경미화원까지. 명 작가의 그림에는 일상의 따스함과 함께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들이 많다.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마저 쉽게 변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이런 상태라면 사람의 마음마저 금세 잊힐 것 같아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림으로 조금이나마 우리의 모습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어요. 제 그림을 보는 순간만큼은 잊고 있던 감정이 다시 새롭게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나갈 예정이다. 그는 “지금까지 경험하고 생각해 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싶다”며 “이전에는 사랑과 예쁜 그림을 그렸다면 이번 관심을 계기로 더 의미 있고 따뜻한 이야기로 작품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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