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애플의 공급망 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순간을맞이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애플과 인텔은 최근 인텔 파운드리를 통해 애플 기기용 칩의 일부를 제조하는 내용의 예비 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1년여 동안 밀도 높은 협상을 이어왔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직접적인 중재가 이번 합의의 결정적 열쇠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합의의 이면에는 미 정부의 파격적인 개입이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여름 인텔에 배정된 약 90억달러의 연방 보조금을 주식으로 전환해 미국 정부가 인텔 지분 10%를 확보했다. 정부가 사기업의 대주주가 되는 이례적인 선택을 통해 인텔의 파산을 막고 전략적 자산으로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지난 1년 동안 팀 쿡 애플 CEO, 제이슨 황 엔비디아 CEO,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 등을 직접 만나 인텔 파운드리 이용을 설득해왔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백악관에서 팀 쿡 애플 CEO를 직접 만나 “인텔은 국가 안보의 핵심”이라며 파트너십을 직접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인텔은 엔비디아의 50억달러 투자 및 CPU 생산 계약, 스페이스X의 테라팹 공장 협력에 이어 애플까지 고객사로 확보하며 파운드리 시장의 ‘빅3’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애플이 오랜 협력 관계인 TSMC를 두고 인텔과 손을 잡은 배경에는 심각한 공급 부족 문제가 있다. 최근 인공지능 붐으로 인해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들이 TSMC의 최첨단 공정을 선점하면서, 애플조차 아이폰과 맥용 칩 물량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팀 쿡 CEO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첨단 칩 가용성 부족으로 아이폰과 맥의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공식 시인했으며, 특히 맥 미니와 맥 스튜디오의 공급 정상화에는 수개월이 더 걸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TSMC의 점유율 독점으로 인해 협상 우위가 약화된 상황에서, 미국 내 제조 시설을 갖춘 인텔은 애플에게 지정학적 리스크와 물량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적의 대안으로 부상했다.
인텔은 이번 계약을 위해 립부 탄 CEO 주도하에 기술적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특히 인텔은 자사의 최첨단 18A 공정을 개선한 ‘18AP’ 공정 설계 키트를 애플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18AP는 기존 대비 성능은 9% 높이고 전력 소비는 18% 줄인 공정으로, 애플의 요구 수준을 충족하기 위한 전략적 무기다.
또한 인텔은 TSMC의 핵심 R&D 부사장 출신인 로웨이젠을 영입하며 기술 격차 좁히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TSMC가 영업 비밀 유출 혐의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기술 패권을 둘러싼 양사의 갈등은 법정 싸움으로까지 번진 상태다.
인텔은 2027년부터 애플의 중급형 M시리즈 칩을 시작으로 점진적인 양산 물량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합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무게중심을 아시아에서 미국 본토로 이동시키는 사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모건스탠리 등 주요 분석가들은 대만 기술 허브의 인재 밀도와 제조 속도를 미국 사막 한가운데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내 높은 인건비와 숙련공 부족 문제가 수율 확보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의 강력한 행정력과 자금력이 결합된 ‘인텔 연합군’의 등장은 삼성전자와 TSMC가 양분해온 파운드리 시장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애플과 인텔의 결합이 단순한 예비 합의를 넘어 실제 양산 성공으로 이어질 경우,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은 효율성 중심의 글로벌 분업 시대에서 안보와 자국 우선주의 중심의 블록화 시대로 진입하게 될 전망이다.
결국 인텔이 약속한 14A 및 18AP 공정의 안정성이 입증되는 시점이 향후 10년의 반도체 패권을 가를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켓잉크 김건우 기자woowoong@market-i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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