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현(사진·사법연수원 36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을 건강검진에 비유하며 이같이 말했다. CP는 기업들이 공정거래 관련 법규를 자율적으로 준수하기 위해 운영하는 내부 준법 시스템이다.
◇대표이사 책임론 대두…CP 중요성 커져
실제로 최근 대법원은 기업의 담합행위에 대해 대표이사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회사의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감독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대표이사가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거나 그 시스템을 이용해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감독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는 기업이 단순히 CP를 도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백 변호사는 “정기 건강검진을 형식적으로 받고 결과를 확인하지 않는 것처럼, CP가 형식적인 제도로 그치면 오히려 경영진의 책임이 가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CP 운영의 실효성에 대해 법원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춘천지법은 2020년 한 기업의 입찰 담합 사건에서 “자율준수편람 발간이나 교육은 기업들이 내부 준법감시를 위해 일반적으로 마련하는 것에 불과하고, 개별적·구체적으로 부당공동행위 방지를 위한 교육을 실시한 내역도 없다”며 책임을 물었다.
반면 서울고법은 2017년 한 금융회사 사건에서 “금융회사가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컴플라이언스 부서에서 한 번 더 법규 위반을 점검하는 이중 방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고, 불공정거래 방지를 위한 교육도 실시했다”며 회사의 책임을 면제했다.
두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CP 운영의 실질을 따졌다는 것이다. 백 변호사는 “형식적인 시스템 구축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작동하는 CP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
백 변호사는 CP의 성공적 운영을 위한 세 가지 핵심 요소로 △최고경영자(CEO)의 확고한 의지 △체계적인 교육과 모니터링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를 제시했다.
특히 CEO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의 규모가 크고 사업장이 전국 각지에 산재돼 있을 경우 공정거래 관련 문제가 기업 본사보다는 일선 현장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CEO의 의지가 개별 현장까지 두루 퍼질 수 있도록 CP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변호사는 CP 운영의 실무적 조언도 덧붙였다. 현 상황에서는 가급적 보수적인 법 해석을 통해 법 위반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과도하게 위축된 해석으로 사업활동에 지장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며 “평상시 법무담당자나 외부전문가와의 소통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령과 고시는 지난 6월 21일부터 시행됐다. 개정 시행령과 고시에서는 CP 평가제도를 체계화하고 과징금 최대 20% 감경 등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평가등급은 A, AA, AAA 3단계로 나뉘며, AAA등급의 경우 과징금이 최대 20%까지 감경된다.
백 변호사는 “기업들이 CP를 도입할 때 대부분 공정거래 분야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과징금 감경이라는 명확한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CP 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평가비용을 면제하고, 평가신청 자격요건도 완화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