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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한 관계자는 3일 사실상 ‘예산 전쟁’이라며 최근 부처 상황을 이렇게 귀띔했다. 내달 국회에 제출되는 정부 예산안을 놓고 막바지 논의가 한창이다. 올해는 문재인 정부 첫해에 예산을 늘리려는 실세 부처가 많아 예산을 깎으려는 기재부와의 신경전이 심상치 않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각 부처 장관들이 새로 임명되고 의욕적 일하려는 생각이 강하다. 예산, 세출에 대한 요구가 많다”며 “(부처들이) 세출 구조조정을 해야 할 판인데 재정당국이 힘들게 작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부총리는 “세수를 감당하는 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고 세출 구조조정을 어떻게 잘할지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는 세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규모가 수십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이행하려면 임기 5년 간 공약재원 178조원이 필요하다. 국정기획위는 증세 등 세입 확충으로 82조6000억원을, 세출 절감으로 95조400억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세출 절감 내역 중 세출 구조조정 규모는 60조2000억원이다. 연간 12조400억원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셈이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각 부처에 스스로 불필요한 예산을 절감하는 ‘셀프 삭감’을 요구했다. 지난 5월 기재부는 ‘2018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추가 지침’을 각 부처에 통보했다. 부처가 모든 재정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재량 지출(정부가 임의로 쓸 수 있는 사업 예산)을 10% 구조조정하도록 했다. 특히 연구개발(R&D), 사회간접자본(SOC), 문화 쪽 재량지출을 정조준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알아서 ‘셀프 구조조정’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세출 구조조정이 필요한 부처들에 이른바 ‘실세 장관들’이 임명됐다. 정치인 출신 장관은 국토부(김현미), 문화체육관광부(도종환), 해양수산부(김영춘), 행정자치부(김부겸), 고용노동부(김영주 후보자) 등이다. 이들 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R&D, SOC 예산을 줄이고 일자리 창출 쪽으로 가려는 건 알지만, 우리 부처의 R&D 예산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출 구조조정의 명분은 이해하지만 자신이 소속된 부처의 예산은 깎아선 안 된다는 입장인 셈이다.
결국 이들 실세 부처의 불필요한 예산을 절감해 대선공약 재원을 얼마나 마련할 지가 관건이다. 앞서 ‘소득·법인세 명목세율이 없다’던 김 부총리는 실세 장관들이 주장한 ‘증세론’에 따라 입장을 바꿨다. 이에 김 부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일관된 메시지를 내놓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김 부총리가 본인의 전문성이 강한 예산 분야에서 설욕전을 치르는 셈이다.
향후 전망은 엇갈린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참여연대 전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는 “그동안 SOC 예산을 많이 줄여온 데다 규모가 큰 국방 예산은 증액하기로 한 상황에서 세출 구조조정은 녹록지 않다”며 “정부가 공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국채 발행, 추가 증세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한경 기재부 예산정책과장은 “세출 구조조정 목표가 연간 재량 지출액(약 200조원)의 5% 수준이어서 달성이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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