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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전쟁의 피해를 사망자와 부상자, 난민, 가옥이나 산업시설 파괴 등을 중심으로 따졌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환경 파괴다. 숲이 불타고 땅과 물과 공기가 오염되면 동식물 서식지까지 파괴돼 생태계 전체가 위협받는다. 건물이나 공장처럼 금방 복구할 수도 없다. 승자와 패자는 물론 전쟁을 겪지 않는 나라 국민까지 피해를 본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걸프전은 내전을 불러일으켜 8년 넘게 끌었다. 유전 시설 등이 파괴될 때 발생한 엄청난 양의 유독가스가 중동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열화우라늄 폭탄은 티그리스강을 오염시켜 이란과 쿠웨이트 등 인접국에도 막대한 피해를 줬다.
그제야 국제사회는 전쟁으로 인한 환경 파괴에 눈을 돌렸다. 2011년 11월 5일 유엔(UN)은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막고 천연자원 쟁탈을 목적으로 하는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매년 11월 6일을 ‘전쟁과 무력 충돌로 인한 환경 착취 국제 예방의 날’로 제정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 60년간 지구상 갈등의 40% 이상이 목재·금·다이아몬드 등을 비롯한 천연자원 개발과 관련돼 있고 특히 물이나 석유처럼 지역 간 편차가 심한 자원이 갈등 요인이라고 밝혔다. 2016년 5월 27일 제2차 유엔환경총회(UNEA-2)에서는 건강한 생태계 유지와 지속 가능한 자원 관리를 위해 무력 충돌의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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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벌이고 있는 전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포탄이 터질 때마다 화학물질을 배출하고 폐기물을 남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파괴된 건물들을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탄소 배출이 불가피하고 새로운 환경오염을 낳는다.
전쟁은 에너지 수급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가격을 높여 무기화하자 전 세계는 ‘오일 쇼크’에 휩싸였다. 각국은 원자력, 풍력, 태양열 등 대체 에너지 개발에 매달렸다.
이번에는 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서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줄이자 유럽 각국은 원자력발전소를 짓고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는 등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심지어 장작을 때 난방을 하는 가구도 생겨났다. 2022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년보다 2억t이 증가해 기후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드리워진 전쟁 공포의 그림자도 점점 짙어지고 있다. 드론과 풍선이 한반도 상공을 넘나들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병력을 러시아에 파견하자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휴전선이나 서해상에서 언제 총격전이나 포격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지경이 됐다.
155㎜ 포탄 한 발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1년 내내 재활용품을 분리배출하고 1회용품 사용을 줄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도 남는다. 한반도에 배치된 최첨단 고성능 무기들이 실전에 사용될 때 일어날 환경 재앙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지금 한반도를 비롯해 지구상에서 가장 시급한 환경운동은 반전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