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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조건부 운전면허, 혼선 빚었지만 방향 맞다

논설 위원I 2024.05.24 05:00:00
노쇠한 고령자를 비롯한 신체·인지 능력 저하자를 대상으로 조건부 운전면허를 도입하는 방안이 정부의 섣부른 발표로 인해 여론의 역풍에 부닥쳤다. 정부는 지난 2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대책’에서 고령자의 운전 능력을 평가해 조건부 면허를 발급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며 그 추진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고령자 차별”이라는 비난이 빗발치자 바로 다음 날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연령과는 무관한 정책”이라고 해명하며 진화에 나섰다. 정책 혼선이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

조건부 운전면허는 야간이나 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 제한 등 조건을 달아 발급하는 면허다. 대상은 의료적 진단이나 객관적 검사에서 신체·인지 능력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운전 시 교통사고를 일으킬 위험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이미 운영 중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정부는 2022년부터 서울대와 함께 운전 능력 평가 방법 등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 연말께 나올 연구 결과를 토대로 내년 이후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운전면허 제도 개편은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공청회를 비롯한 여론수렴 과정도 거치기로 했다.

정부는 조건부 운전면허가 연령과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연령과 관련이 없을 수 없다. 사람이 노년에 접어들면 신체·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실제로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전체 교통사고율이 낮아지는 것과 달리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율은 높아지는 추세다. 운전 능력 평가 방법을 연령과 무관하게 설계한다고 해도 평가에서 고령자는 대체로 젊은층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부터 고령자 본인이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 조건부 운전면허를 받아들이는 분위기 조성이 요구된다.

2018년 이후 지자체별로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반납 제도를 시행해 왔지만 반납률이 2%대에 불과함을 감안하면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다만 신체·인지 기능이 젊은이 못지않은 고령자도 많은 만큼 이동권을 과도하게 제약하지 않도록 제도 설계를 정교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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