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존 하이엇은 1869년 면화에 질산과 유기용제를 섞어 셀룰로이드를 개발했다. 그러나 쉽게 폭발하는 단점이 있어 당구공 재료로 쓰이지는 못하고 장난감, 영화 필름, 틀니, 만년필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셀룰로이드는 식물 세포막을 이루는 셀룰로스가 원료여서 인공 합성수지는 아니었지만 발명가들에게 영감을 줘 후속 연구를 부추겼다.
벨기에 출신의 미국인 리오 베이클랜드는 독일 화학자 아돌프 폰 바이어의 논문을 보고 페놀과 포름알데하이드를 반응시키면 수지(나뭇진)와 비슷한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5년의 실험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 자신의 이름을 따 베이클라이트라고 명명하고 1907년 12월 7일 특허를 얻었다.
최초의 인공 합성수지인 베이클라이트는 플라스틱이란 별칭으로 불렸다. ‘아무 모양이나 만들 수 있다’는 뜻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한 말이다. 다음 달 7일은 플라스틱 탄생 115주년 기념일이다.
플라스틱은 썩지도 녹지도 않고 절연성까지 뛰어나 당시 급속도로 보급되던 전기제품 재료로 안성맞춤이었다. 호박 대신 목걸이나 팔찌 등 장신구로 활용되고 고급 화장품 용기 재료로도 쓰였다.
베이클랜드는 1910년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 공장을 세우고 ‘1000가지 용도의 물질’이란 광고 문구를 큼지막하게 내걸었다. 이후에도 특허 100여 개를 출원해 큰돈을 벌었다가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1944년 세상을 떠났다.
1922년 독일 화학자 헤르만 슈타우딩거는 플라스틱이 수천 개의 분자 사슬로 구성된 고분자 화합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계기로 폴리에틸렌, 비닐(PVC), 나일론, 발포 폴리스티렌(스티로폼) 등 수많은 변종이 잇따라 발명됐고 용도는 1000가지를 넘어 무한대로 확장됐다.
그러나 플라스틱이 우리 생활을 점령해 쓰레기가 넘쳐나자 썩지 않는다는 장점은 치명적 결함이 됐다. 태우면 독성물질을 내뿜고 땅에 묻으면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켜 생태계를 위협한다. 기적의 신물질로 추앙받다가 1세기 만에 재앙을 부르는 괴물로 전락한 것이다.
|
회의장 앞에는 조형물 ‘고래’(古來)가 세워졌다. 5년 전 영국 북부 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향유고래의 배를 가르자 밧줄, 그물, 컵 등 100㎏에 달하는 플라스틱 제품이 쏟아져 나온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관람객은 쓰레기로 가득찬 고래 뱃속에 들어가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환경 재앙을 체험할 수 있다.
INC-5에는 175개국 정부대표단과 비정부기구 회원 등 3879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화석연료에서 뽑아낸 1차 플라스틱 폴리머의 생산을 어떻게 규제할지가 최대 쟁점이다. 선·후진국 간, 산유국과 비산유국 사이에 입장과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려 의미 있는 협약을 마련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한국은 세계 4번째 플라스틱 생산국이자 1인당 폐기물 배출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플라스틱 중독국이어서 규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한국은 이미 화석연료 사용이나 온실가스 배출 등과 관련해 ‘기후 악당’으로 꼽힌 처지다.
회의 개최국인 우리나라가 플라스틱 규제에서도 비협조적인 환경 훼방꾼으로 낙인찍힐까 봐 걱정스럽다. 전 세계 환경운동가들의 이목이 지금 부산에 쏠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