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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퇴임 직전 장기미제 전담법관 도입...보여주기 아닌가

논설 위원I 2023.08.29 05:00:00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장기 미제 중점 처리 법관’을 배치했다고 한다. 쟁점이 복잡하고 재산가치 파악이 어려워 장기 미제 사건이 상대적으로 많은 기업 전담 재판부 4곳에 경력 10년 이상 판사 2명을 추가 배치, 사건 처리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6년 동안 장기 미제 사건이 급증했는데도 ‘나 몰라라’ 식으로 방치했다가 비판여론이 비등하자 퇴임 20여일을 앞두고 뒤늦게 조치를 취한 셈이다. 전형적인 면피성, 보여주기식 행정이다.

김 대법원장 재임 중 재판 늑장은 극에 달했다. 1심 판결이 2년 안에 나오지 않는 장기 미제 사건 수가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7년 대비 작년까지 민사소송의 경우 3배, 형사소송은 2배가량 늘었다. 사건처리 기간도 민사 1심 합의부 사건의 경우 평균 293.3일에서 420.3일로 127일, 형사 1심 합의부 사건은 150.8일에서 204일로 53.2일 각각 길어졌다. 재판이 질질 늘어지면서 뒤늦게 승소했지만 이미 회사는 문을 닫았거나, 배상금을 기다리다 판결 전 사망하는 등 기막힌 사연이 차고 넘친다.

그 원인 제공을 김 대법원장이 했다. 그는 법원의 꽃이라는 고법 부장에 대한 승진제 폐지, 일반 법관들이 법원장을 투표로 뽑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 등 포퓰리즘성 인사제도를 통해 사법 시스템을 왜곡했다. 그 결과 선배 법관들은 후배 법관들을 독려하기보다 인기관리에 연연하는 경향이 생겼고 일반 판사들도 열심히 일할 유인이 사라져 1주일에 3건만 선고하는 게 불문율로 자리잡았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 체제하에서 판사 1인당 업무부담이 14% 감소했다고 하니 재판지체는 당연한 결과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법 격언에서 보듯 재판 지연은 사법의 실패로 귀결된다. 우리 헌법이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재판 지체의 직접적 책임이 있는 김 대법원장은 결과적으로 반헌법적 행위로 국민에게 분노와 고통을 안긴 셈이다. 추락한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 회복을 위해서도 차기 대법원장은 김명수 체제가 망가트린 사법시스템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재판 늑장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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