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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음 가득한 갤러리…박영 출판사 70년 역사 고스란히

이윤정 기자I 2023.01.03 05:40:00

갤러리 박영 특별전 ''두레 문화, 박영 70''
책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 전시
창립자 안원옥 회장 고미술 컬렉션도 공개
2월 15일까지 갤러리 박영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넓을 박, 꽃부리 영(博英)’. ‘넓게 인재를 양성한다’는 뜻을 지닌 박영 출판사는 1952년 ‘대중문화사’라는 명칭의 출판사로 시작해 70년의 세월을 한국의 근현대문화사와 함께했다. 파주출판단지 1호 갤러리인 ‘갤러리 박영’은 안종만 박영사 회장이 미술문화에 깊은 뜻을 가지고 시작한 갤러리다. 70년만큼은 아니지만 갤러리 박영도 올해로 개관 15주년을 맞이했다.

박영 출판사의 70주년 뿌리를 되짚어보고 숨은 미술 사랑을 엿볼 수 있는 특별 기념전 ‘두레 문화, 박영 70’이 2월 15일까지 경기 파주출판단지 내 갤러리 박영에서 열린다. 갤러리는 현재 안종만 회장의 딸 안수연 대표가 맡아 운영하고 있다.

최근 갤러리 박영에서 만난 안수연 대표는 “2008년 갤러리 박영을 개관할 때 파주 출판단지 안에는 갤러리가 한 곳도 없었다”며 “본사는 물론이고 갤러리도 운영이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묵묵히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은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예술에 대한 애정 어린 DNA가 아닐까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오재우 작가가 경기 파주시 갤러리박영에서 작품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두레는 원시적 유풍인 공동노동체 조직. 농촌사회의 상호 협력, 감찰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변의 이웃과 함께 힘을 합침으로써 과업을 성취하는 한민족의 유구한 공동체 정신을 표상하는 문화다. 안 대표는 “박영사 70년을 압축하는 키워드로 두레 정신을 선정했다”며 “국가와 민족 공동체를 위해 박영사가 힘 써왔던 정신을 기리고자 했다”고 의미를 뒀다.

박영 출판사는 민법총칙, 경제학 원론 등 다양한 학술서를 펴낸 출판사로 유명하다. 경영진은 3대에 걸쳐 미술품을 수집하고 15년째 갤러리를 운영할 정도로 미술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출판사의 역사를 모태로 한 만큼 이번 특별전에는 박영사의 책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다. 오재우 작가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진 작품을 선보인다. 1950∼1980년대 출간된 박영사 수장고 속 빛바랜 책 가운데 70권을 추리고 촬영했다. 오 작가는 “책은 오래되고 색이 변하지만, 그 안의 내용이나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했다”며 “책을 직접 보고 오래된 책의 냄새까지 느낄 수 있도록 책들도 함께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창립자인 고(故) 안원옥 회장이 남긴 고미술 컬렉션도 공개한다. 고종의 어진을 그린 심전 안중식의 그림부터 안중근 의사가 중국 뤼순 감옥에서 간수에게 남긴 서예 작품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작품에는 ‘황금백만량불여일교자(황금 백만 냥도 자식 하나 제대로 가르침만 못하다)’라고 써있는데 이를 통해 실력을 양성시키려는 안중근의 교육자적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서예 작품(사진=갤러리 박영).
소치 허련, 청전 이상범, 연담 김명국 등의 그림도 전시해놓았다. 구본민 큐레이터는 “허련 선생은 김정희 선생의 제자로 그의 작품에선 진한 먹감의 특징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상범 작가의 경우 동아일보 기자 재직 당시 마라토너 손기정의 일장기를 지운 일화로 유명하다”며 “화가로 변신한 후에는 서양화의 데생을 동양화에 차용해 수묵실경산수화를 그렸다”고 했다.

이동춘 작가는 박영사의 책을 층층이 쌓아 훈민정음 해례본 이미지를 덧씌워 촬영한 뒤 1.4m 길이 한지에 인화한 ‘박영의 역사’를 선보였다. 이 작가는 “고미술품과 어떤 사진을 연결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파주에 있는 한옥에서 ‘형설지공’을 표현해보고 싶어서 박영사의 책과 호롱불을 콜라보해서 작업했다”고 말했다.

토마스 엘러는 박영사에서 출간한 ‘경영전략’ 도서를 확대해 3차원적으로 그려낸 ‘더 바운티’를 작업했다. 이외에도 이지현 작가가 박영사 책을 뜯어서 만든 ‘드리밍 북’을 비롯해 임상빈, 랠프 플렉, 조나단 켈런 등 국내외 작가들이 책 또는 도서관을 소재로 만든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동춘 작가의 ‘박영의 역사’(사진=갤러리 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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