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아파트라더니 복도·베란다마다 담배연기 '뻐끔뻐금'

유현욱 기자I 2017.06.12 05:00:00

작년 9월 이후 전국 170곳 금연아파트 지정
일부 주민들 복도 등 공동구역서 흡연 일삼아
아파트 단지내 금연구역 위반 단속 사실상 불가능
복지부 "아직 안착단계 시민의식 변화 지켜봐야"

경기 부천의 한 아파트에 거주 중인 한모(29)씨가 지난달 30일 자신의 아파트 계단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찍은 모습. 부천시는 지난 2월 이 아파트를 금연아파트로 지정했다. (사진= 한씨 제공)
[이데일리 유현욱 권오석 기자] “담배 연기가 집으로 들어올 때가 잦아 자주 환기를 시켜야 해요. 그런데 미세먼지나 황사가 심한 날엔 창문을 열지도 못하고 답답하지요.”

경기 부천의 한 아파트에 사는 한모(29)씨는 “금연아파트로 지정된 지 3개월이 넘었지만 계단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는 여전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한씨는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신고하려 해도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는 것 때문에 조심스럽다”이라며 “이대로라면 이름만 금연아파트일 뿐 다시 ‘너구리굴’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주민 동의 아래 금연아파트가 늘고 있지만 몰래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 탓에 유명무실한 경우가 적지 않아 주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신고를 받고 단속반이 출동해도 이미 흡연자가 현장을 벗어나 허탕을 치기 일쑤여서 폐쇄회로(CC)TV 설치 등 단속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4일 방문한 서울 강북구의 한 금연아파트 출입구에 ‘금연구역’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권오석 기자)
◇ 작년 9월 이후 전국 170곳 금연아파트 지정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아파트 주민 절반 이상이 금연구역 지정에 대한 동의를 얻어 신청하면 담당 지방자치단체장이 아파트 내 공동구역(복도·계단·엘리베이터·지하주차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게 했다. 국가금연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국 170곳의 아파트가 공동구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이른바 금연아파트다.

서울시는 작년 10월 강북구와 양천구 소재 아파트들을 시작으로 4월 현재 13개구 34개 아파트를 금연아파트로 지정했다. 금연아파트에는 건물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등에 금연아파트임을 알리는 표지를 부착한다.

금연아파트의 가장 큰 맹점은 공동구역이 아닌 곳에서의 흡연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 서울에서 처음으로 금연아파트로 지정된 강북구와 양천구 소재 아파트들을 방문해 취재한 결과 이들 아파트에서 단지내에 흡연구역을 지정해 재털이를 비치해 놓고 있었다. 문제는 흡연구역이 아파트 건물과 불과 5~6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1~2층 주민들은 계속 간접흡연 피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금연구역에서 자연스레 담배를 피워 무는 흡연자들도 볼 수 있었다.

주민 최모(35·여)씨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담배 냄새가 건물 안으로 흘러들어온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아파트 놀이터에 있던 강동연(13)군은 “담장 근처 외진 곳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김모(43)씨는 “집 안에서는 가족 눈치 보랴 밖에서는 주민 눈치 보랴 마땅히 담배를 피울 곳이 없다. 흡연자가 죄인은 아니지 않냐”고 항변했다.

◇ 주요 흡연장소 베란다 화단 등은 단속대상서 제외

금연아파트 내 금연구역도 일반 금연구역과 마찬가지로 흡연을 하다가 적발되면 1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이를 적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아파트 단지 안은 법적으로 사유지인 만큼 무작정 단속을 나가기 쉽지 않다는 게 각 구청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신고를 받고 이동하는 동안 흡연자가 자리를 떠나기 때문에 이 역시 무의미하다.

마포구 관계자는 “금연아파트내 금연구역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 출동한 적이 있다. 이동하는 사이에 이미 흡연자는 자리를 떠나 허탕을 쳤다”고 말했다.

금연아파트 시행 8개월이 다 되도록 흡연단속 실적이 전무한 이유다. 흡연자들이 주로 담배를 피우는 베란다와 단지 내 화단 등은 금연구역에서 빠져 단속할 근거가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금연아파트 지정 제도가 이제 안착하기 시작하는 상황인 만큼 좀더 자리를 잡을 때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공동구역 이외에 사적공간을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07~2013년 일부 지역에서 금연아파트를 시범운영하다 폐지한 적 있는 서울시는 “과태료 부과조차 할 수 없던 이전보다는 강제력을 띠는 만큼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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